21세기 광자문명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가 겪고 있는 변화 중 가장 근원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는 정보통신 사회의 급격한 발전이다. 정보의 수요가 급격히 증대되면서 정보의 생산, 저장, 가공, 처리, 전송,소비가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문제는 기존의 정보통신 방식으로는 새로운 수요와 증대되는 수요를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 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이에 대응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정보통신 문명을 창조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적 시점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어떤 문명이든 새로운 시대적 수요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낳게 했고, 그 결과 언제나 새로운 문명이 혁명적으로 일어나곤 하였다. 인류의 문명이 석기문명, 농경문명, 청동문명, 철기문명, 기계문명, 전기문명, 전자문명 등 몇 단계의 혁명적 변화를 거치며 발전해 온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는 과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하버드대학 토마스 쿤 (Thomas Kuhn) 교수가 그의 저서「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기도 하다.
정보통신 문명의 한계를 넘어
정보통신 문명도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몇 단계의 혁명적 변화를 거쳐왔다. 19세기 이전의 수동식/기계식 방식은 전기의 발명과 함께 전동식 방식으로 대체되었고, 20세기 직전에 발견된 전자는 전기시대를 전자시대로 접어들게 하였으며, 1948년의 반도체 발명은 20세기를 눈부신 전자문명으로 발전시키며 오늘에 이르게 했다.
20세기 전자문명의 두 핵심축은 반도체(전자의 아파트)와 통신(전자의 고속도로)이다. 반도체의 대용량 메모리 전자소자는 초미세화의 스케일링 법칙 (Scaling Law) 및 초고밀도화의 무어의 법칙 (Moore’s Law)을 더 이상 적용하기가 어렵게 하고 있다. 한편 구리선 전자 고속도로는 60년대부터 이미 체증을 보이기 시작했다. 음성 중심의 단순한 전화 시대에서 데이터와 영상 중심의 컴퓨터 시대로 진입하며 정보통신 수요가 급격히 증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초고층 아파트 주변에 교통체증이 심하게 일어나는 현상과 같다.
구리선 정보통신 용량에 한계가 있음을 감지한 과학자들은 서서히 광자(Photon)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원자, 분자 등 깊은 자연이나 드넓은 우주 외계의 정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광자만큼 빠르고 상세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60년대 초 레이저와 광섬유를 발명하게 되었고, 오늘날의 광통신과 인터넷혁명을 가져오게 되었다. 온 세계 대륙과 바다는 광섬유로 둘러 싸이고, ‘광의 도시(Optical City)’등 새로운 용어와 함께 광자는 이미 우리 방 앞에까지 접근해 왔으며,우리 컴퓨터와 TV화면에 떠오르는 화면도 모두 광자의 덕분으로 일어난 정보혁명의 일부이다. 전자에만 취해있던 세계는 어느새 광자로 뒤덮이기 시작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전자를 대체하는 광자의 혁명
현재 진행중인 이러한 혁명의 과정은 20세기 초 구리동선이 전기와 전화가 없던 도시와 건물에 침투했던 과정과 비슷하다. 이제 21세기에는 광자가 전자를 대치해 들어가며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현 역사적 정황은 100년 전 역사적 정황과 매우 유사하다. 불과 한 세기만에 우리는 새로운 혁명의 문턱에 선 것이다.
광자문명이 완성되려면 광자의 길(고속도로)을 집안까지 넓게 열어주어야 한다. 현재 광섬유 중심의 매크로 네트워크(Macro-Network)는 우리 방 앞까지 와 있지만, 그 이후 각 지붕 밑에 놓여 있는 구리선은 수 미터 이하, 센티미터, 밀리미터, 마이크로 미터, 나노미터, 실리콘 반도체 소자에까지 이르고 있어, 마이크로/나노 네트워크(Micro/Nano-Network) 영역에까지 광자가 침투하지 않으면, 21세기 정보통신은 증대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 노력의 하나로, 1980년대 후반, 물리학자들은 광자의 생성률이 극히 미미해 영원히 전자소자로만 남을 것으로 믿어지던 실리콘 나노(NANO) 반도체로부터 눈부신 광자를 발생시킴으로써 광자시대의 가능성을 예고한 일이 있다. 필자도 1992년 한국 역사상 최초(세계 4번째)로 실리콘에서 빛을 방출하는 물리현상을 관찰하여, 한국 방송(KBS) 저녁 9시 뉴스를 통하여 1분 30초간 전국민에게 빛을 발하는 실리콘 반도체를 방영해 주며, 21세기‘실리콘 광자문명’의 도래를 예고한 일이 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과학 혁명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 광자문명시대
20세기 전자시대를 지배했던 INTEL, IBM 등 세계 굴지의 반도체 전자기업들과 Silicon Valley 의 Stanford, 동북부의 MIT 등 선도적 세계최고 대학들은‘실리콘 전자공학(Silicon Electronics)’외에‘실리콘 광자공학(Silicon Photonics)’을 앞다투어 연구하기 시작했다. 광자 없이 전자 만으로는 미래 기업의 존폐 또는 리더십(Leadership)을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VLSI 및 실리콘 반도체 전자기술이 지금보다 더욱 미세화되고 집적도가 높아질 경우, 구리선으로는 더 이상 정보를 주고 받을 수없는 한계로 진입하게 된다. ‘VLSI 실리콘 광자기술’은‘VLSI 실리콘 전자기술’의 한계를 혁명적으로 극복해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열기가 세계적으로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센터(일명 OPERA)도 이들과 어깨를 겨루며 세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실리콘 광자공학’을 포함한‘VLSI 광자공학’‘광인쇄회로기판’‘마이크로/나노 광네트워크’‘유비쿼터스 광자공학’등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21세기 광자문명을 여는 집적형 광자기술은 20세기 전자문명을 연집적형 전자기술을 기억하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광자는 전자와는 전혀 다른 과학적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21세기 광자시대를 경쟁력 있게 맞이 하려면 광자를 좀 더 깊고 넓게 연구하고 이해해야 한다. 세계 선진 각국 들이 물리, 화학, 생물, 공학 등 전 분야에 걸쳐 21세기 광자기술 리더십(Leadership)을 다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미 21세기 광자문명 시대는 열렸고 새로운 광자과학과 광자공학의 시대도 열렸다. 21세기 정보화 사회는 광자기술의 성패에 달려 있다. 20세기 정보화 사회가 집적형 전자기술로 꽃을 피운 것처럼, 21세기정보화 사회는 집적형 광자기술로 꽃피울 것이다. 우리나라도 광자를 더 깊이 이해하여‘21세기 광자문명’을 세계적으로 빛내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 본 글은 한국과학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월간 과학문화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원저작자는 아래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