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기후변화를 우리 경제의 기회로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법제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컨대 녹색성장법을 제정하고 세부시행령까지 만들어야합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앞으로 5년, 10년 안에 뭘 어떤 식으로 해야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확실한 이정표를 보여줘야합니다. 그리고 잘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인센티브를 줘야합니다.”
이장무 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은 지난 20일 서울 중구 정동 환경재단에서 조선일보와 조선경제i가 함께 만드는 조선비즈닷컴과 인터뷰를 갖고, “정부가 법으로 구체적인 이정표를 세우면 기업들은 그걸 보고 투자와 기술개발을 하고 대학은 거기에 맞는 녹색 인재를 키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서울대 총장 퇴임을 3개월 앞둔 올해 4월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에 취임, 퇴임 이후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환경분야 일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예고를 한 바 있다. 지난달 서울대 총장에서 물러난 그는 우리 사회 각계에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녹색성장의 중요성을 알리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서울대 총장 출신으로 시민단체 부설기관의 이사장을 맡아 환경운동에 나선 이유에 대해 이 이사장은 “기후변화 문제야말로 인류가 당면한 가장 근본적이고 급박한 과제”라며 “이를 알리는 일을 통해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총장시절부터 녹색캠퍼스 운동을 펼칠만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기후변화가 피해갈 수 없는 ‘인류의 숙제’이며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들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법 제정에 나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기업들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운 면도 있겠지만 우리 경제에 분명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경제성장을 하려면 불가피하게 에너지 사용량이 증가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예컨대 미국 전체의 지난 20년간 에너지 사용량이 증가했으나 환경규제와 에너지 효율 관련 제도를 강화한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지난 10여년간 에너지 소모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 기후변화 전도사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빈부격차나 인권, 질병 문제보다 더욱 근본적이면서 해결이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갑자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지난 2004년 8월부터 2년간 신재생에너지학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 학회는 에너지, 경제, 공학전문가 등이 모두 참여하는 학회로 기후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서울대 총장 시절에도 기후변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총장으로 재임중이던 2008년 서울대는 지속가능한 그린 캠퍼스 선언을 했다. 2030년까지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계획, 물을 재순환해 사용하는 비율을 8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느낀 계기가 있었나?
“지구온난화를 늘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만 하더라도 과거 남부 지방에서만 볼 수 있던 목백일홍 나무가 이제는 서울에서 자란다. 비가 오는 모습은 또 어떤가. 거의 아열대 지방처럼 변하지 않았나.
2007년 홍콩대학에서 열린 전세계 대학 총장 회의에서 현재 미국 에너지성 장관인 스티브 추 박사가 발표한 것을 들은 것이 최근 기억나는 인상적인 발표였다. 그는 기후 변화로 지구가 사막화되면서 일어날 식량과 물 부족 현상의 미래상을 보여줬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들은 모두 이 주제에 관심이 많았다. 총장회의의 단골 메뉴가 기후변화였다. 지난 2008년 일본 삿포로에서 G8 정상회담이 열릴 때 현지에서 베이징대, 동경대를 비롯한 전세계 유명 대학 총장들이 모여 공동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 대학은 인재양성 이외에도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설 의무가 있다. 예일대나 동경대 같은 곳이 기후변화 분야에서 매우 앞선 실천을 하고 있다. 서울대도 10~20년 후에는 굉장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 기후변화라는 현실을 어떻게 하면 우리 경제의 기회요인으로 만들 수 있나?
“현 정부의 경우 녹색성장을 표방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 의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법 제정 등이 아직 제대로 안되고 있다. 정부가 법으로 정책 추진 방향을 선제적으로 알리고 이를 기업 등이 따르도록 해야 하는데 아직 이 부분이 약하다.
정부는 방향성을 알려주고 나서 이를 따르는 기업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 이것이 늦어지는 데에는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이유도 있을텐데 이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 없이 협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교토의정서에서 지정하는 온실가스 의무 감축국은 아니지만 곧 될 확률이 높다.
영국이 2007년 제정한 기후법(climate act)과 같은 구체적인 법을 만들고 세부 시행령도 내놔야 한다. 그리고 5년주기, 10년주기로 계속 새로운 방향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이것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대학도 이에 맞게 인재를 육성할 것이다.”
-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은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있는데….
“틀린 얘기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주정부가 가전제품과 자동차에 대해 몇년 주기로 어느 정도까지 효율을 높여야 하는지를 고시했다. 이러다보니 캘리포니아에서는 동급 냉장고의 에너지 소모가 다른 곳에 비해 3분의 1이 됐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는 지난 10년간 에너지 소비는 일정하게 유지하면서도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한국 정부가 해야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국가가 법으로 세세하게 방향을 알려주고 잘하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파격적으로 주는 것이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를 위기 요인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기회 요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기회가 될 수 있겠나
“기후변화를 잘 활용하면 미래 산업을 선점할 수 있다. 최근 황창규 지식경제부 R&D 전략기획단 단장을 만났을 때 이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범지구적인 에너지문제, 환경문제, 지구온난화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도체도 저에너지 반도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전자제품들이 열을 많이 내뿜는데 이 열을 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열이 덜 나도록 부품을 개발한다면 새로운 산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건설분야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다. 건물과 도로 건설도 기후변화에 영향을 준다. 이를 막기 위해 미래 건물은 지능형 시스템을 갖출 전망이다. 이런 시스템에는 수많은 센서와 제어장치 등이 필요할텐데 이 분야에서 앞서나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