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9일 오전 11:33
기원전 467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는 떨어진 운석을 보고 태양이 헬리오스 신이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금속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확신했다.
그의 불경스러운 주장은 무신론을 탄압하는 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영험한 신을 믿지 않는 자들 혹은 하늘의 일에 관한 학설을 가르치는 자들을 고발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종교와 과학 간의 오랜 갈등의 기원이 된 사건이다.
미국 역사학자 제니퍼 마이클 헥트가 쓴 '의심의 역사'(이마고 펴냄. 원제 'Doubt')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2천600년 동안 동서양에서 제기된 '종교적 의심'의 역사를 살펴본 책이다.
종교에 대한 의심은 아낙사고라스와 같이 과학에 기반을 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 유물론, 합리주의 ▲무신론적 초월 프로그램 ▲세계주의적 상대주의 ▲우아한 삶의 철학 ▲부당함에 대한 도덕적 거부 ▲철학적 회의주의 ▲신자들의 의심 등 고대부터 현대까지 나타난 '의심 프로젝트'를 일곱 가지로 분류했다.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갈릴레이나 유대인이 신이 선택한 민족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가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한 스피노자, "인간은 단지 신의 존재 유무를 추측할 수 있을 뿐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쓴 파스칼 등은 모두 첫 번째 유형에 속하는 의심가들이다.
그런가하면 무신론적 초월 프로그램은 아시아에 해당하는 얘기다.
서양에서의 종교적 의심이 대체로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었던 데 반해 동양에서는 신의 존재가 거의 의문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힌두교에는 여러 신이 있었지만 그들은 세계를 창조하거나 유지하지 않았고 불교는 인도의 전통적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 힘도 거부했다. 유교와 도교도 모두 무신론적이었다.
무신론자이면서도 위대한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존재는 르네상스기 유럽의 의심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정반대의 개념인 '의심'과 '믿음'은 끊임없이 불화했을 것 같지만 저자는 위대한 신앙인과 위대한 의심가는 유사성을 보이며 역사적으로 의심이 믿음을 더욱 강화했다고 말한다.
"의심 이전에 믿음이 존재했지만 의심의 문화 이후에 현대 신앙의 중심은 생겨날 수 있었다. (중략) 또 다른 사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의심이 종교를 고무시켰다는 점이다. 플라톤에서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파스칼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의심의 문제제기를 통해 스스로를 규정해왔다."(23-24쪽)
종교의 역사에 대한 책이 셀 수 없이 많은 데 반해 그 반대편에 선 의심의 역사를 다룬 책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사고의 전환을 이끄는 책이다.
저자는 "의심은 독자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의심가가 된다는 것은 위대한 전통과의 만남이고 조용한 존경과 열린 자부심으로 가득한 삶을 의미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