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따라 체인지하라
2012. 1. 27. 11:37
가장 훌륭한 인공위성도 테러리스트의 마음까지 꿰뚫어볼 수는 없다. 최고의 위성도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의 속내까지 드러낼 수는 없다.”
‘전쟁과 반전(War and Anti-war)’을 쓴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미국이 후세인의 권부 안에 단 한 사람의 스파이라도 심어놓았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고 말한다. 미국은 최첨단 첩보위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찰 기술을 통해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 접경에 집결하는 것을 눈치챘지만 이를 단순히 후세인의 협박일 뿐이라고 판단하고 무시해버렸다. 후세인의 진의를 알아챌 수 있는 대인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파이의 미래는 있나

토플러는 정보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휴민트
(humint)의 중요성은 여전하다고 본다. 스파이라는 직업은 미래에도 살아남을 것이다. (물론 정보혁명으로 스파이들이 일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고 새로운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스파이들은 바로 도태될 수밖에 없겠지만.) 직업인으로서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건 스파이들뿐만이 아니다. 정글경제를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자기가 선택한 직업의 미래를 걱정한다. 비약적인 기술혁신이 이뤄지면서 자기가 몸담은 산업이나 직종이 아예 사라져버리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기도 하고, 그 산업이나 직종의 수요와 공급이 급격히 바뀌면서 미래 소득 흐름이 불안정해지지는 않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인적자본(human capital)에 대한 투자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개인들의 커리어(career) 선택에 따르는 리스크(risk)에 주목했다. 이들은 특히 대학 전공학과 선택과 커리어 리스크의 관계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대학 교육을 받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 가운데 하나다. 교육 투자는 장래 수익을 기대하며 지금 자산을 사들이는 금융 투자와 비슷하다. 하지만 교육은 금융자산과 달리 잘게 쪼갤 수도 없고(indivisible) 남에게 간단히 팔아버릴 수도 없다(non-tradable).
따라서 교육 투자의 리스크를 분석할 때에는 일반적인 자산가격결정모형(asset pricing model)에서와 달리 커리어 특유의 리스크(idiosyncratic risk)에 주목해야 한다. 커리어 리스크는 흔히 장래 근로소득의 변동성을 의미한다. [리스크의 기초적인 개념은 정글경제의 원리 두 번째 질문(리스크는 무조건 피해야 하나)을 참조하기 바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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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자본 투자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대학 전공학과 선택과 커리어 리스크의 관계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출처:NGD> | |
사람들은 어떤 커리어를 선택할 때 리스크에 상응하는 프리미엄(risk premium)을 요구한다. 어떤 직종의 소득흐름이 들쭉날쭉 불안정할수록 다른 직종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어야 그 직종을 택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이들보다 부유한 이들이 더 적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요구할 것이다. 교육에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 불안정한 소득흐름으로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 겁내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부자들보다 가난한 이들이 더 겁을 많이 낼 것이다.
부가 쌓일수록 리스크가 큰 일을 택할까

2005년 레이번 삭스(Raven Saks, 하버드대)와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는 실증연구를 통해 부자일수록 리스크가 큰 직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삭스와 쇼어는 먼저 1968~1993년 직종별 임금 통계를 바탕으로 컴퓨터, 엔지니어링, 교육, 의료 업종의 소득흐름이 세일즈, 경영관리, 엔터테인먼트 업종보다 안정적이라는 점을 밝혔다. 근로소득이 얼마나 들쭉날쭉한지만 보면 예술가나 연예인, 사업가, 세일즈맨은 리스크가 큰 직업이고 컴퓨터 기술자나 엔지니어, 교사, 의사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업이라는 뜻이다. (물론 한국의 사정은 다를 수 있다.) 두 사람은 이어 어떤 학생(가족)이 평생 모을 수 있는 부(total lifetime wealth, 금융자산과 임금의 현재가치)의 크기가 커리어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어떤 학생(가족)의 부가 갑절이 되면 그 학생이 커리어 리스크가 적은 교육 관련 학과 대신 리스크가 큰 비즈니스 학과를 택할 가능성이 약 20% 커지는 것으로 추정했다.
다음 그래프는 이런 연구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세로축은 직종별 소득흐름의 변동성으로 가늠한 커리어 리스크를 나타낸다. 가로축은 부가 늘어날 때 해당 전공을 선택할 확률을 나타낸다. 전체적으로 그래프가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의 부가 늘어날수록 소득 변동 리스크가 큰 직종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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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과 직업선택 (Saks and Shore, 2005)
이 연구 결과의 정책적 시사점은 뭘까? 삭스와 쇼어는 가난한 학생들이 리스크가 높은 인적자본 투자를 꺼린다면, 심지어 그 투자의 기대수익(expected return)이 높은데도 리스크 때문에 투자를 꺼린다면 (개인적인 기대수익이 클수록 사회적인 기대수익도 커지는 한) 정부가 이들에게 더 많은 보조금(subsidy)을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금융 지원과 함께 상속세(estate tax), 누진적 소득세(progressive income tax)를 포함한 재분배정책(redistributive policy)을 설계할 때 부가 커리어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 예일대 교수는 새로운 사회보험을 제안한다. 개인이 미래소득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생계보험(livelihood insurance)을 만들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는 꿈을 갖고 있는 가난한 소녀가 있다고 하자. 이 소녀는 최고의 연주자가 되지 못하면 오랫동안 굶주려야 하는 이 직종의 특성을 생각하면서 꿈을 포기할 수도 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더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특수한 생명과학 분야를 파고 들고 싶어도 10년, 20년 후 이 분야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될지 너무나 불확실해 고민하는 과학자도 있을 것이다. 그가 커리어 리스크 때문에 가장 하고 싶어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전공을 포기한다면 사회적으로도 효율적인 자원배분에 실패하게 된다. 가난한 바이올린 연주자나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려는 강한 과학자가 두려워하는 소득 변동 위험을 금융시장을 통해 광범위하게 분산시키자는 게 쉴러의 아이디어다.
미래에는 어떤 직업이 뜰까

커리어 리스크가 두려울수록 미래에 어떤 직업이 뜨고 질지 알고자 하는 욕망도 강해진다. 직업의 트렌드를 좇는 전문가와 미래학자들이 숱한 예측을 내놓고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건 없다.
2006년 포브스(Forbes)지는 멀지 않은 장래에 사라질 직업 열 가지를 꼽았다. 모두가 디지털 머니를 쓰는 시대에 슈퍼마켓 계산대나 고속도로 톨게이트, 은행 창구에서 종이돈과 동전을 세는 이들은 사라질 것이다. 200여 년 동안 쌓아온 브리태니커(Britannica)의 아성이 마이크로소프트의 CD 한 장에 어이없이 무너진 걸 보면 오프라인 백과사전 편찬자의 미래는 어두워 보인다. 뮤직CD 가게 매니저가 일자리를 잃고 필름 인화 기술자를 찾는 이들이 없어지리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포브스는 전통적인 노동조합 조직자의 미래도 밝지 않다고 보았다(이 대목은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광부는 바이오마이닝(biomining) 기술 때문에, 건설노동자는 3차원 프린팅 건축기술 때문에 설 자리가 없어진다. 콜센터 직원은 컴퓨터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전투기 조종사는 로봇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나타나면서 석유 탐사업자도 역사 속에 사라질 것이다. | |
포브스지는 컴퓨터에 자리를 내줄 콜센터 상담직을 비롯해 멀지 않은 장래에 사라질 직업 열 가지를 꼽았다. <출처:NG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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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유망직종은 무엇일까? 이 잡지는 유전자 검사원(기업들은 DNA 검사로 약물을 남용하거나 생산성을 해치는 성향을 지닌 직원을 걸러낸다), 방역 집행인(신종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공권력이 필요하다), 침수도시 전문가(기후변화로 많은 도시가 물 속에 잠긴다), 텔레포트 전문가(자동차가 사라지고 순간이동이 가능해진다는 전망은 아직 믿기 어렵다), 로봇 수리 전문가(로봇이 어느 정도 인격을 지닌다면 치료 전문가라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동물 후견인(동물의 법적 권익을 지킨다), 비행선 조종사(활주로가 필요 없는 비행선은 저개발국에서 인기를 끈다), 할리우드 홀로그래퍼(holographer, 홈 시어터가 흉내내지 못하는 영상을 제공한다), 우주여행 가이드, 수소연료 충전소 매니저가 뜰 것으로 보았다. | |
2010년 초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는 10년 후 유망한 직업으로 환경과 기후변화, 재생에너지(수소와 핵 연료), 새로운 제조기술(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나 메탈 스킨 metal skin), 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로봇과 인공지능, 비즈니스 개선, 나노와 바이오기술, 사회서비스(간호사와 돌보미), 교육, 식량(유전자기술을 이용하는 농업) 분야의 전문직을 꼽았다.
기계에 밀려날 지식경제의 노마드

미래에 어떤 직업이 뜨고 질지를 가늠하려면 무엇보다 인구구조와 기술이 어떻게 바뀔지, 세계화(globalization)가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를 살펴야 한다. 특히 기술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정보기술은 동시통역사의 일자리를 뺏을 수도 있고 로봇과 인공지능기술이 외과수술 전문의의 일을 대신할 수도 있다. 외국어 통역사도 대부분 컴퓨터와 로봇에 자리를 비켜줘야 할 것이다. | |
하지만 정보혁명시대에도 스파이가 살아남듯이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변해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직업도 많을 것이다. 포브스는 정치인, 매춘부, 장의사, 세무원, 이미용사, 예술가, 종교지도자, 범죄자, 부모, 군인은 먼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가디언은 법률가, 정치인, 작가, 예술가와 엔터테이너, 장의사, 매춘부, 세무원, 종교지도자가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요한 건 일의 형태나 방식보다 노동과 업(業)의 본질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Robert Heilbroner)는 “우리는 지난 200여 년 동안 기계가 빼앗아 가버린 일자리를 떠나 그 기계가 창출한 다른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거대한 이동을 목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사상가인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산업화 사회는 노예노동의 종말을 이끌었고 접속의 시대(Age of Access)는 대량 임금노동을 끝낼 것으로 보았다. 그는 “자동화되는 세계경제 속에서 전혀 쓸모가 없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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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 그는 “자동화되는 세계경제 속에서 전혀 쓸모가 없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었다. <출처: Heinrich-Böll-Stiftung at en.wikipedia.org> | |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카푸친 씨는 미래의 충격을 두려워하며 움츠러들기만 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기계에 자리를 내주더라도 언제든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지적 유목민(nomad)이 돼야 한다. 추상적인 추론(abstract reasoning), 문제 해결(problem solving),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협업(collaboration)의 능력을 꾸준히 키워갈 수 있다면 지식경제의 변화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 |
- 휴민트
휴민트는 ‘human intelligence’의 줄임말로 인간 스파이의 정보 수집을 뜻한다. 정보기술을 활용한 첩보활동을 뜻하는 시긴트(sigint, signal intelligence)와 상대되는 말이다.
- 증강현실
가상의 물체가 현실 세계에 겹쳐 보이도록 하는 기술. 가디언은 가상빌딩 건축이나 아바타 디자인 기술이 뜰 것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