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연구
지속가능한 에너지공급
때에 따라 체인지하라
2012. 3. 6. 11:24
'독일이 원자력발전소를 폐기한다고 하지만, 독일은 프랑스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수입해 쓰면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전기료가 가장 싼 편이고, 원전을 폐기한다면 전기료가 40% 올라야 한다. 내 목표는 원자력 5대 강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자회견 직후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즉각 반박문을 내놓았다. 2011년 원전 8기를 폐쇄한 독일은 오히려 전기를 유럽에 수출했고 전기요금 변동도 없었는데, 대통령은 무지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논란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외국의 원전 정책과 한국의 에너지 정책 현황을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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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제공 이명박 대통령(앞)이 2009년 전남 영광원자력발전소를 방문해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
2011년 5월 메르켈 총리는 이전 결정을 뒤집었다. 독일에서 원전은 전력 수요의 22%를 차지하는데, 2011년 원전 8기를 폐쇄하고 2022년까지는 17기를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의 양이원영 에너지기후국장은 "독일에서도 원전을 폐쇄할 경우 전기요금이 얼마나 오를까 하는 논쟁이 있었다. 10% 오르니 마니 했는데, 지난해 전력거래소상 전기가격 변동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원전 폐쇄하고도 전기 수출한 독일
원전 8기를 폐쇄한 2011년 독일은 60억㎾h가량 전기를 유럽에 수출했다.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 때부터 준비해온 재생에너지 덕분이었다. 원전 8기를 즉각 폐쇄하면서 재생가능 에너지 전기의 비중(20.4%)이 원자력 전기 비중(17.7%)을 앞지르게 되었다. 독일은 단기적으로 천연가스·화력발전소를 추가하되, 원전 전력 대부분은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예정이다.
직접 피해자인 일본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에너지 정책 전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일본은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의 원자력 발전국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만 해도 일본의 에너지 전략은 '원전을 확대하고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2010년 6월에 채택된 일본의 에너지 기본계획에는 2030년까지 발전 총량에서 차지하는 원전 발전량 비율을 현행 30%에서 5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2011년 5월 간 나오토 당시 총리가 에너지 전략을 백지 상태에서 새로이 짜도록 지시하면서 근본 전환기에 돌입했다. 정부 차원에서 발전단가를 계산하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30쪽 상자 기사 참조). 스위스 정부 같은 경우 2034년까지 국가 전력의 40%를 공급하는 원전 5기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같은 경우도 올해 원전과 관련한 논란이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원전 의존도가 80%에 육박한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원전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프랑스의 야당인 사회당과 녹색당은 2025년까지 원전 24기를 폐쇄해 원전 의존도를 50%까지 낮추기로 합의했다. 프랑스는 올해 대선(1차 4월, 2차 5월), 총선(6월)을 치르는데, 원자력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당사국 일본은 물론 독일·스위스·이탈리아·벨기에·오스트리아·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원전과 에너지 정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것처럼 원전 확대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현재 발전량 기준으로 31% 수준인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59%로 끌어올리고, 원전 확대를 통해 공급 위주 전력수급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1인당 전력소비량, 일본 추월
그동안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값싸고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을 우선시했다. 에너지 행정이 매출 확대를 장려하는 산업 행정의 보조 수단으로 기능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 전기료는 낮게 유지되었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유럽과 일본에 비해 훨씬 낮다. 한국 전기요금을 100이라고 하면, 미국 138, 프랑스 170, 영국 221, 일본 242 정도다. 지난 10년 동안 물가 안정과 산업경쟁력 강화 등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해온 결과다. 전기요금 저가정책은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전기 권하는 사회'에 가깝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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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Newsis 지난해 11월 독일에서 핵폐기물 운송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프랑스의 원전에서 나온 핵폐기물이 독일의 저장시설로 오는 것에 반대했다. |
한국에서 전기 소비의 53.6%는 산업용이 차지하고 있다(2010년 기준). OECD 국가 평균이 32%가량인 데 비해 산업용 전기 소비 비중이 크다. 산업용 경부하 전기(밤 11시~오전 9시에 사용되는 산업용 심야전기로 원가의 73%에 공급된다) 혜택을 받는 등 '전기를 24시간 쓰는 게 상대적으로 이익이 되는 구조'가 되었다. 실제로 전기 사용량이 많은 탄소섬유 사업체 도레이는 한국에 공장을 세우면서 "한국의 전기요금이 중국보다 싸기 때문이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양이원영 국장은 "지난해까지 한국전력의 부채가 5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외 자본이 저렴한 전기요금으로 이익을 내기 위해 설비를 늘리며 수조원대 전기요금 특혜를 받고, 그로 인해 늘어난 한전 적자를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주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정치권, 시민단체, 학계와 종교계가 참여하는 에너지대안포럼이 구성되었다. 이들은 대안적 국가에너지 비전을 마련해 정당과 국민에게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상훈 에너지대안포럼 운영위원은 에너지 공급보다는 수요 관리를 강조한다. 이 운영위원은 "전력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화력발전이나 원자력 같은 대용량 발전 시스템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 저탄소 사회로 전환하려면 가장 급한 과제는 전력 수요,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전력 수요 관리와 재생가능 에너지가 중심이 되는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갈 것인지' 아니면 '대용량 발전소 증설로 유지되는, 원전 위주의 에너지 다소비 사회를 유지할 것인지' 한국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