룽타의 속삭임 : 손민익 시집
룽타의 속삭임 : 손민익 시집, 도서출판 아마 1. 여한이 없는 사랑
때에 따라 체인지하라
2016. 3. 18. 13:27
여한,
풀지 못하고 남은 원한
어찌 이루지 못한 사랑에 피맺힌 상처가 남았으면
그 사랑에 여한이 있는가
그대여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의 노래를
들은 일이 있는가
여한이 남은 사랑의 노래를
그대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들은 일이 있는가
여한이 없는 사랑의 노래를
경남 하동 악양벌에 가면
그믐달이 뜬 밤
용이가 월선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소나무 두 그루가
들판 가운데 서 있다
그믐달마저 지고 난 밤에
매화꽃 홀로 지켜보면,
그대여
여한이 없는
용이와 월선의 사랑의 노래를 들어보라
우리 많이 살았제?
야,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심더!
그라문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천대받는 무당의 딸 월선과 용이의
이루지 못한 사랑
평사리를 떠나 만주로, 길고긴 세월
질기고도 한 많은 인연을 이어간
가슴 아픈 사랑
월선의 죽음을 앞두고
용이와 월선은 손을 잡고
사랑의 고백을 한다
여한이 없다. 고
이제
여한이 없는 사랑이 완성되었다
그대여
경남 하동 악양벌에 나비가 날면
긴 동면의 시간을 땅속에서 한 올 한 올 엮어낸
꽃이 피어 봄이 왔음을 알리고
들바람이 불어와
용이와 월선의 사랑의 소식을 들려주리라
그믐달마저 지고난 이 밤에도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처가 깊어져
잠 못 이루는
새벽별 순례자들에게
악양벌에 부는 바람이여
용이와 월선의
그 여한이 없는 사랑의 노래를
전하고 위로해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