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이윤을 추구한다’의 명제를 한 번 의심해보는 건 어떨까? 수익 증대와 비용 절감을 통한 주주 가치 극대화가 과연 ‘기업 활동’의 전부일까?
동아시아 발전모델 및 기업 지배구조 연구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현재 유력한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아오키 마사히코 스탠퍼드대 교수는 지난달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한 강연에서 “애초 기업(corporation)은 가톨릭교회나 옥스퍼드, 베로나, 파리 등지의 대학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며, 따라서 기업의 본질적 기능은 “개인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지식의 창출, 또 그 지식의 전파”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기업은 다양한 주체의 지식(또는 인식)이나 정보가 결합되는 시스템이다. 구성원 모두의 ‘집단 지성’을 끌어내야 하는 셈이다. 자연히 수많은 인식 틀의 조합이 가능하다. 아오키 교수는 그 중에서도 ‘경영 인식’과 ‘노동 인식’이 모두 필수적이라 여겨지는 기업 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봤다. 금융위기 이후 추세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진단으로, 결국 이윤 추구는 ‘기업 활동’의 아주 일부분이 된다. <하니티브이>는 영어로 진행한 아오키 교수의 강연을 번역·편집해 싣는다. 아래는 강연 전문.
동아시아 경제와 기업 (Dynamics of the East Asian Economies and Corporations)
제 강연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번째로, 아시아권 경제 진화의 배경을 이해하는 체계와, 이런 배경에서 일본·중국·한국 같은 동아시아 경제가 왜 서로 이익을 얻게 되는지를 논해보려 합니다. 두번째로, 나날이 다양해지는 형태의 동아시아 기업들이 어떻게 상호 이익을 내게 되는지를 다뤄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최근에 낸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소개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앞서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께서 떠오르는 아시아 경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하셨습니다. 올해(2010년) 중국 경제가 US달러 기준으로 일본 경제를 앞질렀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습니다만, 만약 구매력(PPP) 기준으로 각국 경제의 힘을 따지면, 중국은 오래전에 이미 일본을 앞질렀습니다.
그 시기는 추정에 따라 90년대 초일 수도, 2000년대 초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경우라 해도, 표에서 보시듯이, 중국,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모두 합한 동아시아 경제의 구매력(PPP) 규모는 유럽연합(EU)이나 미국 경제보다 큽니다. 비록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지역에는 미치지 못합니다만, 여하튼 이 3곳의 경제권은 세계 경제의 거대하고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요.
우리는 이렇듯 떠오르는 거대한 아시아 경제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아시아에 강력한 경제권을 만든다는 표지인가요? 중국이 순전히 그 규모 만으로 지역을 지배하게 된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무역과 ‘전략적 상호보완’을 통해 서로 얻는 것이 생긴다는 의미인가요?
일본어로 돼있어 죄송합니다만, 세로축은 전체 고용 가운데 농업 종사자를 나타냅니다. 가로축은 구매력 기준 1인당 소득입니다. 갈색 선은 한국, 파란 선은 일본입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이 빠르게 성장하던 60년대 초 농업인구 비율은 여전히 60% 이상입니다. 일본이 빠르게 성장하던 50년대 초 또한 50% 안팎입니다. 79년 개혁·개방 무렵 중국은 70%에 이릅니다. 오늘날 중국은 연안과 내륙으로 나눠서 보겠습니다. 연안은 이미 30% 이하고, 내륙은 아직 50% 가량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인구 변화입니다.
파란색 선은 일본의 65살 이상 인구 비율입니다. 그래프는 1950~2050년의 추이를 나타냅니다. 검정색 선은 미국인데, 보시듯이 노년층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지요. 그러나 고령화 속도를 보면 일본이 아주 빠르고, 한국도 빠른 속도로 이를 따라잡고 있습니다. 빨간 선은 중국의 추이입니다.
빠르게 성장할 때 필요로 하는 노동력은 농업 인구의 이동을 통해서 뿐 아니라 인구 자체의 증가에 의해서도 이뤄진다는 점에도 주목해야겠습니다. 약간의 계산을 통해 1인당소득 성장의 각 요소를 나라별로 따져봤습니다.
왼쪽은 일본, 가운데는 한국, 오른쪽은 중국입니다. 전체 높이가 바로 생산성의 향상으로 볼 수 있으며(파란선은 1인당GDP), 그래프에 나타난 기간은 일본은 1956년부터 10년 단위로 구분했고, 한국은 1970년대부터, 중국은 1978년부터 각각 2008년까지입니다. 1인당소득 성장을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해봤습니다. 빨간색은 노동에 참가하는 인구 비율 변화에 따른 기여분입니다. 고령화에 따라 이 비율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프에 나타난 최근 일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초록색은 노동 생산성 향상에 따른 기여분입니다. 보라색은 농업 인구의 이동이 성장에 가져온 효과입니다. 고도성장 초기에는 보라색 부분이 꽤 중요해 보입니다. 중국 경우엔 1978~89년 기간 1인당 소득 성장의 거의 절반이 이같은 농업 인구의 공업 분야 이동에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중국에선 노동 생산성 향상의 기여도가 상승하고 있음에도 이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1991년 1인당 소득은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구 고령화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빨간색 부분은 앞으로 몇십년동안 (마이너스 방향으로) 점점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인구 고령화의 영향은 일본 뿐 아니라,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곧 나타날 겁니다. 고령화에 있어서는 싱가포르도 이미 일본과 같은 단계입니다.
우리는 동아시아 나라들이 과거 개발되는 과정의 패턴을 4단계 진화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1단계는 노동력의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이뤄지는 공업화입니다. 전쟁 전의 일본이나 개혁·개방 이전 1970년대 중국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2단계는 공업으로의 인구 유입, 특히 농업 부문에서의 급속한 이동에 따른 고도성장입니다. (농업 부문 인구 비율은) 일본은 50%에서 20% 이하로, 한국은 60%에서 20%이하로 떨어졌죠. 중국은 1978년 70%였는데 연안에선 20%에 가까워지고 있죠. 2단계는 또한 1단계에서의 높은 출생률이 노동 시장 공급에 있어 일종의 ‘배당금’을 가져오는 형태이므로, 일부 인구통계학자들은 인구 배당(population dividend) 단계라 부르기도 합니다. 3단계에선 이같은 인구 배당과 농업 인력 유입 등은 줄지만, 경제 성장은 계속되고 자체 생산성이 개선돼 1인당 소득도 늘어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세계적으로 선진국 경제에서도 볼 수 없었던 미지의 단계인 인구 성숙(population maturity), 곧 인구 고령화와 출산률 저하가 나타나는 4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사진에 보이는 ‘기러기형’(경제 발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기러기형 패러다임’이라 부르는 설명 방식이 있습니다. 야생 기러기는 V자 형태로 비행합니다. 동아시아에서 발전은, 일본이 가장 앞에서 날아가는 ‘리더 기러기’처럼 한 단계 앞서 기술 발전을 이루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이를 줄지어 뒤따르는 식으로 이뤄진다는 한때의 유명한 비유였습니다. 이런 시각은 1930년대 아카마쓰 가나메가 제안했고 1960년대에 다시 유행하기도 했으나, 전통적인 기술 이전의 패러다임인 이런 비유 방식은 더이상 적절치 않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의 각 경제가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러기형 패러다임’ 2번째 버전인 셈입니다. 이 버전에서 주목하는 것은 각 단계의 각국 경제가 저마다 갖고 있는 사회적·경제적 문제들입니다. 전 단계에서 누적된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까지도 포함합니다. 예컨대, 중국의 연안 지역은 자체 기술 발전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됐다는 점에서 3단계로 넘어갈 즈음이라고 봅니다. 지난주 저는 중국에서 학계, 관계, 언론계 인사들을 두루 만났는데, 그들의 가장 중요한 걱정거리는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노동력의 흐름이 전환점에 이르고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임금 수준이 올라가고, 민공들은 내륙(고향)으로 돌아가는 등의 현상입니다. 때문에 자체적인 생산성 향상에 더욱 의존해야 할 상황인거죠. 지표들을 보면 앞으로 약 10년 안에 그 정도는 해낼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중국은 2단계 시기 고도성장과 급격한 인구 변화 등을 겪으며 누적된 문제들도 동시에 해결해야 합니다. 환경 문제, 소득 불균형, 도시 문제, 보편적 사회 보장 등 여러가지가 있지요. 중국은 이 문제를 해결할 자원을 갖추게 될 겁니다. 그런데, 4단계로 진입하는 일본은 3단계에서 중국이 맞닥뜨린 많은 문제들을 이미 해결해왔습니다. 더욱 보편적인 사회보장 시스템을 만들었고, 대중 교통을 통해 더 효율적인 도시 관리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인구 구성의 변화 탓에 3단계에서 고안된 사회보장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일본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납니다. 일본이 아직까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해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하나만으로 큰 경제적 문제라고 할 순 없고, 사회심리적 요소를 수반한 문제겠지요. 일본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이나 중국처럼 떠오르는 다른 나라 경제의 활력으로부터 힘을 얻어야 합니다. 일본은 노동력 집약적인 기술로는 산업의 힘을 계속 유지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사회적 기술이나 친환경 기술, 도시 관리 등을 수입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각 나라가 저마다 가진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다른 단계에 있는 나라에 의해 향상시킨다면, 서로 얻는 게 있지 않겠냐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이 부분은 세부적으로 다뤄볼 내용이 있습니다만, 실제 산업 현장에 계신 분들은 제 말의 의미를 알아채셨기를 희망합니다.
이제 제 강의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기업은 무엇이며, 기업은 이같은 진화 단계에서 어떻게 공헌할 수 있겠냐 하는 문제입니다. 기업은 주주의 재산이고, 수익 관리와 주가 극대화는 바람직하며, 주주의 권리는 국가가 보장한다는 게 금융위기 전까지 통용된 기업의 전통적 개념이었습니다. 이것이 서방에서는 정통적이면서 전통적인 시각이었고,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이에 대해 회의감이 생겨납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은행(월드뱅크) 연례 학술회의에서, 금융위기 이전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사이먼 존슨 MIT 교수가 했던 주장을 기억하시는지요. 금융계 수뇌부가 워싱턴DC의 정가를 사실상 접수했던 게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접수 작업은 폭력이나 뇌물이 아니라 설득을 통해 이뤄졌다고 덧붙입니다. 이를 통해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원칙이 학자들 뿐 아니라 정책결정권자들의 생각까지 지배하게 됐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시각, 날로 중요해지는 인적 요소와 지식을 직시하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금융시장의 역할에 대한 재논의도 필요할 겁니다.
세계적으로 흥미로운 모델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인적 자산 집약적인 기업으로, 컨설팅 회사나 로펌 등이 있습니다. 비즈니스스쿨에서 가장 널리 거론되는 사례는 ‘사치&사치’입니다. 아주 경쟁력 있는 광고회사죠. 경영진은 보수를 올려줄 것을 제안했고, 주주, 특히 미국의 기관투자자들이 이를 거부해 기각됩니다. 그러자 경영진은 다른 직원들을 데리고 사치&사치를 떠났고, 남은 회사는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인적 자산이 중요한 기업에서 주주들이 인적 자산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는 건 효용이 없을 수 있다는 거죠.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플랫폼 유형은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페이스북 같은 기업을 말합니다. 이들 기업은 플랫폼 또는 기반을 제공하고, 그 위에 수많은 크고작은 ‘위성회사’들이 응용프로그램 등을 덧붙여 운영됩니다. 플랫폼 자체가 아무리 잘 고안됐다 해도, 응용프로그램이 없으면 플랫폼은 쇠락하게 됩니다.
또다른 예는 연구·인수형(R&A)입니다. 시스코(Cisco) 시스템스가 한 예가 되겠죠. 기업 안에서 연구·개발을 하는 대신, 실리콘밸리에서 혁신적인 디자인 능력을 갖춘 작은 회사를 찾아 인수하며 성장해나가는 식입니다. 따라서 연구·개발(R&D)가 아니라 연구·인수(R&A)인 겁니다.
일본, 독일, 프랑스 등 기존 선진국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 또 있습니다. 일본의 동료 학자들과 조사를 해봤습니다. 오늘날 저명한 대기업들도 형태가 점차 다양해지면서, (산업 자본이) 은행과 대출로 결합하거나, 고용에 있어 공동체식 인력 관리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일본식 모델은 이제 소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경쟁력 있는 큰 회사들이 주식 소유는 분산시켰고, 인력 관리에선 전통식을 다소 조정했습니다. 오늘날 일본 유명 기업들의 주식 분산 형태를 보면 미국이나 영국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분의 약 50%가 개인 및 외국인 기관투자자 소유입니다. 그렇다고 전통적 인력 관리의 틀을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닙니다. 20년 전 프랑스 기업의 특징은 집중된 소유 구조였습니다. 가족 중심적 기업이 대표적이죠. 20년이 지난 오늘날 프랑스 기업의 지분은 많이 분산됐습니다. (일본 만큼은 아니지만요.) 유럽 학계와 언론계에선 이같은 변화, 곧 외부 투자자들에 의한 지분 소유 구조가 직원들에게 이롭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이들 회사는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인력 관리에 관심을 보였고, 더욱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물론, 지엽적인 업무는 분리시켜 외부 노동력에 맡기기도 했지요. 독일은 이른바 ‘노사공동결정제’가 있지만, 바이엘이나 SAP 같은 일부 기업들은 노사공동결정제가 아닌 나름의 경영 형태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지분이 널리 분산된 기업이라 해도, 독일 기업은 직원들의 요구에 상당한 관심을 쏟습니다. 노사공동결정제를 포기했음에도 노동자의 이익이나 기업 내 노동자 단체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겁니다. 이렇게 다양해진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우리는 기업, 곧 코퍼레이션(corporation)의 본질에서 힌트를 얻게 됩니다. 왜 개인은 코퍼레이션이라 불리는 조직을 만들까요? 역사적으로 코퍼레이션의 법적 개념은 근대 민족국가나 기업(business corporation)보다 전에 생겨났습니다. 애초 코퍼레이션은 가톨릭교회나 옥스퍼드, 베로나, 파리 등지의 대학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습니다. ‘회사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블랙스톤(18세기)은 이들 코퍼레이션이 “종교와 학문을 장려하고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적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 기업도 코퍼레이션의 이같은 특성을 공유하지만, 주된 분야는 아무래도 사업 활동이지요. 그러나 이런 역사적 관점을 보면, 기업(코퍼레이션)의 기본적 기능은 개인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지식의 창출, 또 그 지식의 전파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기업의 개념은 결합적 인식 체계 또는 정보 체계로 재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런 인식 활동은 경영진 사이에서 이뤄집니다. 기업의 위치를 볼 수 있게 되는, 결국 전략 기획 같은 활동이죠. 그 다음엔 엔지니어나 육체노동자, 마케팅 담당자 등 직원들입니다. 이들은 인식에 따라 전문적인 기술로 이 전략을 실행하겠지요. 그리고 외부 투자자들은 결합적 인식의 도구로 삼을 수 있는 자본을 제공합니다. 결국 이렇게 보면, 기업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이기도 합니다. 기업은 주주들의 재산이며, 직원과 경영진은 주주들의 대리인이라는 애초의 관계를 뒤집어 본 셈입니다. 그렇다면 다소 학술적인 질문입니다만, 경영이 가치 확대를 위해서 자본에 대한 통제 권한을 노동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대답이 ‘네’냐 ‘아니오’냐에 따라 우리는 기업에서 노동이 필수적 자산인지 아닌지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 필수적 자산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직원들이 필요한 기술이나 중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직원들이 나름의 중요한 자산을 갖췄다 해도, 시장에선 유동적인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경영진이 전략 보완을 위해 물적자산을 들여 시장에서 노동을 고용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런 정의 아래서 노동은 경영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직원들은 나름대로 자산을 갖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요.
이 필수성에 대한 정의에 따라 경영(M)은 필수적/반(半)필수적, 노동(Worker)은 필수적/반(半)필수적/비(非)필수적라고 나눠 기업 형태를 따져봅시다. 전통적인 기업 모델에선, 경영은 필수적이고 노동은 비필수적 또는 반필수적으로 본다고 생각합니다. 표의 가운데칸인 셈인데요, 한국의 재벌 등 전통적인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이에 해당할 겁니다. 전통적인 독일·일본 기업은 경영도 노동도 반필수적인 경우입니다. 일본의 경영자들은 다양한 층위에서 (경쟁자이자 같은 ‘직원’인) 직원 무리를 뚫고 승진해서 자리에 오릅니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누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등이 구분이 모호한 채 경영자와 직원들 사이에서 공유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직원 자산은 반필수적이라는 거죠. 독일은 직원들이 산별 노조에 가입하고 경영자들은 기업협회 등에 가입합니다. 그들의 관계는 산업 수준에서는 필수적이지만, 기업 수준에서는 아닙니다. 직원이 다른 회사로 가면 경영자가 새로운 직원을 고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앞서 언급한 SAP나 바이엘 등에선 이미 이같은 구조가 무너졌고, 일부 주요 기업들이 이 구조에서 빠져나가면서 종언을 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경영과 노동이 모두 필수적이 될 수도 있겠지요. 떠오르는 모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일부 경쟁력 있는 일본 기업들은 전통적 인력 관리를 어느 선까지는 지속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수출 기업이 강하고 내수 기업이 약하다는 건 옛날 얘깁니다. 수출 기업에도 강한 기업, 약한 기업이 있고, 내수 기업 중에서도 교통 분야처럼 강한 기업이 있습니다. 강한 기업들에선 경영진의 강력한 리더십이란 특징이 나타납니다. 경영의 힘이 한국 경영진처럼 뚜렷이 나타난다거나 강력하다고 볼 순 없지만요. 한국 경우에도 직원들이 날로 중요해지는 게 현실입니다. 페이스북이나 시스코 등 미국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인수를 통해 얻은 지식 또한 아주 중요해지고 있다는 얘기도 했지요. 결국 경영 인식과 직원 인식 모두가 필수 자원이 되는 미래를 보여주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전통적인 개념이 기업에 최고의 처방전은 아닐 수도 있다는 분석이 학계에서도 나옵니다. 전통적 기업 모델에서는 경영자의 능력이 일방적인 필수 요소이므로 주주 가치 극대화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만약 직원과 경영이 모두 필수라면, 주주 가치 극대화와는 구분되는 장기적인 기업 가치 극대화가 중요해집니다. 기업 가치는 주주, 직원, 경영자가 각각의 공헌도 따라 나눠지겠지요. 이 경우 주식시장은 경영과 직원 사이의 연결고리가 효율적인지 여부를 모니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그 진단에 있어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이고 주식시장은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서 주가라는 지표로 나타내줍니다. 따라서 주가는 기업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중요한 도구일 뿐, 주식시장 논리 만으로 기업의 지배구조를 통제할 순 없게 되죠.
이 주제에 대한 더 세부적인 탐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의 관계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졸고 <진화하는 다양성 속의 기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
아오키 마사히코 교수는 스탠포드대 경제학부 일본학 부문 명예교수이다. 스탠포드 경제정책연구소(SIEPR)와 프리맨 스포글리 국제학연구소의 시니어펠로우, 도쿄재단 고등연구소 가상센터(VCASI) 이사를 겸하고 있다.
그는 제도경제 이슈와 비교경제 이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론경제학자이자 응용경제학자다. 관심 분야는 제도 경제학, 기업 지배구조, 일본 경제다. 최근 저서로는 2001년 클래런던 강의를 바탕으로 저술한 <진화하는 다양성 속의 기업:인지, 지배구조 그리고 제도>(옥스퍼드대학 출판부)가 있다. 이 책에서 아오키 교수는 다양한 결합적 인지 시스템으로써 기업 구조의 다양성(변종)을 조명하고, 이것이 기업 지배구조에 갖는 시사점에 대해 논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게임이론 관점에서 기업과 사회, 정치, 금융시장 간 상호작용으로 확장시켜 설명한다. 2001년 MIT에서 출간한 <비교제도주의 분석>은 게임이론 언어로 경제학·사회과학에서 논의되는 비교제도주의연구를 통합하는 프레임워크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연구는 어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ER·America Economic Review),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 계간 경제학저널(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 Review of Economic Studies), 리뷰 오브 이코노믹 스터디스, 경제문학저널(The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산업과 기업의 변화(Industrial and Corporate Change), 경제적 행동과 단체 저널(The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and Organizations) 등 주요 경제저널에 실렸다. 현재 국제경제학회 회장(2008~2011)이고 전 일본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계량경제모임(Econometric of Society)의 연구위원이자, 일본과 국제경제 저널(Journal of Japanese and International Economies)의 초대 편집인이다. 일본학술상을 수상(1990년)했고, 제6회 국제 슘페터상(1998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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