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장률이 5%대로 돌아간다면 제2의 한강의 기적이다.”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센터장을 지냈던 드와이트 퍼킨스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한국경제를 두고 한 말이다. 같은 날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제 추세적 성장률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9월에는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이 “한국경제가 올해 성장 둔화를 지나 내년에는 저성장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도성장’ ‘한강의 기적’ 같은 말에 익숙한 우리 국민에게 ‘저성장’이란 익숙지 않은 단어다. 적어도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야 닥쳐올 먼 미래의 이야기쯤으로 치부되던 세상이었다. 하지만 저성장의 징후는 이미 한국경제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국민소득이 추계되기 시작한 1953년부터 2008년까지 55년간 한국경제는 연평균 6.7%씩 성장했다. 이 가운데 1968~1970년, 1976~1978년, 1986~1988년은 평균 10% 이상의 높은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1982년부터 1991년까지 평균 9.1% 성장했던 한국경제는 다음 10년(1992~2001년) 동안에는 평균 5.6%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이 가시화되기 전인 2008년까지 경제성장률은 평균 4.5%로 더 낮아졌다.
경제구조가 어느 정도 성숙한 상태에 접어들게 되면 과거와 같은 고성장은 달성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수준인 한국경제도 장기적으로 성장률 하락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문제는 속도와 폭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밝힌 3·4분기 전년 동기 대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4%였다. 전년 동기 대비 실질 GDP는 지난해 1·4분기 8.5%, 2·4분기 7.5%를 기록한 뒤 4%대로 급락했다가 지난 분기부터는 3%대로 내려앉았다. 올 들어 지금까지 성장률은 3.7%로 유로존 재정위기 등 대외여건과 최근 하락 추이를 감안하면 올해 4% 성장도 장담하기 쉽지 않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계획이지만 FTA가 경제구조 잠식을 통한 성장 급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내년 전망은 더 어둡다.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 등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3.6%로 내다봤다. 4%대 중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는 정부 전망치보다 1%포인트 가까이 낮은 수준으로 해외 투자은행(IB) 중에서는 내년 우리 경제의 2%대 성장을 전망하는 기관도 있다. 글로벌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가 직격탄이지만 최근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저성장 구조의 가시권에 들어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통계청의 장기인구추계를 보면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2005년 총인구 중 71.7%에서 2016년 73.4%를 정점으로 점차 감소해 2030년 64.4%, 2050년 53.0% 수준으로 낮아진다. 2016년부터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줄고 부양해야 할 사람은 늘어난다는 뜻으로 저축률이 떨어지면서 성장잠재력도 떨어지는 수순을 밟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5월 발간한 ‘경제전망(Economic Outlook)’에 따르면 한국의 중기(2010~201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3%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칠레(4.8%)와 이스라엘(4.4%)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하지만 장기(2016~2026년) 성장률 전망치는 2.4%로 급락했다. 잠재성장률도 중기 3.8%에서 장기 2.4%로 2%대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퍼킨스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경제가 계속 고도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의 성장률은 국민소득 1만~1만6000달러 사이에 둔화되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라면서 “모든 것을 다 잘해도 과거처럼 성장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는 것. 잠재성장률은 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생산자원을 최대한 활용했을 때 달성 가능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저성장은 상대적 의미로도 쓰임. 매년 5% 성장하던 나라가 3% 성장이 장기화되면 저성장이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