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문공은 중국 춘추시대 제2대 패공이다. 이름은 중이, BC 636년부터 BC 628년까지 재위했다 공자 시절
아버지 진헌공의 핍박을 받아 19년간 타국을 떠돌아 다니다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군위에 오르는 파란만장한 역경을 겪는다 즉위직후 당시 강대국이던 초나라를 격파하고 진나라를 패(覇)자국으로 끌어올린 명군이다 치세는 비록 9년에 불과하지만 정도에 어긋나지않는 행동으로 오늘날까지도 가장 모범적인 군주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나라가 안정을 찾아가자 진문공은 여러 신하들에 대하여 포상을 실시햇다
19년의 망명생활동안 자신을 따라 다니며 함께 고생했던 가신들에 대해서는 물론 국내에 남아 나라를 지키면서 자신을 영접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상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 진문공이 시행한 논공행상의 기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등공신 : 진문공과 함께 망명하며 열국을 유랑했던 신하들
2등공신 : 국내에 머물면서 진문공이 귀국할수있도록 힘써준 신하들
3등 공신 : 진문공이 귀국했을때 즉시 항복하고 영접한 신하들
진문공은 1.2.3등에 대해서도 경중을 따져 다시 상을 상하로 나누어 포상을 실시 하였다
.1등공신 상급 : 조쇠, 호언 차급 : 호모, 서신, 위주, 호사고, 선진, 전힐 등
.2등 공신 상급 : 난지, 극진, 난순, 극곡 차급 : 주지교, 손백규, 기만 등
. 3등 공신 상급 : 극보양, 한간 차급 : 양유미, 가복도, 극걸, 선멸, 도격 등
19년의 망명생활 , 그리고 드라마틱한 멋진 귀환 그 기나긴 유랑생활과 귀국하여 군위에 오르기까지 어찌 위의 사람 들만의 공이 있었겠는가 눈에 띄지않게 음지에서 고생한 사람들의 수는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 보이지 않는 공로자들을 진문공이 일일이 기억할수는 없었다 공을 세우고도 논공행상에서 빠진사람들이 많으리라. 진문공은 성문높은곳에 조서를 내걸었다
"공로가 있는자로서 상을 받지 못한자가 있으면 자진하여 신고하라 2차로 포상하리라"
진문공의 가노로서 19년동안 진문공의 곁을 그림자 처럼 따라 다니며, 궂은 일을 도맡아 했던 호숙은 뜻밖에도 자신에게 아무런 상이 내려지지않자 크게 실망하여, 진문공에게 말하였다
19년동안 한시도 떨어 지지않고 따라다니며 모시고 1만리가 넘는 여러나라를 유랑하느라 발가락이 찢어지도록 고생했으나, 상을 내릴때 나만 빼놓으니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것이 있습니까
진문공이 말하였다 호숙아 내가 이번 상을 내리면서 정한 기준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면, 나는 이번에 인과 의로써 나를 지도하여 깨닫게 해준사람에게 상급의 상을 내렸고, 묘책으로 나를 도와 여러 제후로 부터 욕되지 않게 해준 사람에게는 그다음 상을 내렸고,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위험으로부터 나를 구해준 사람에게 다음 다음 상을 내렸다. 다시 말해서 가장 으뜸 되는 상은 덕에 대하여 준것이요 그 다음은 재능에 대하여 준것이요 그 다음은 공로에 대하여 준것이다 나를 위해 백방으로 애써 준 수고로움은 필부의 힘일 뿌ㅡㄴ이다
진문공의 이러한 포상론은 진문공이 어떠한 군주였는지 알게 해주는 이야기 이다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포상은 공평해야 한다 상이란 공을 세운 사람에게 공을 세운 만큼 상을 내려야 그 가치와 역할을 다하는것이다 조금이라도 과하거나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상을 받은 사람사이에 불평과 불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진문공은 포상을 시행함에 있어 혈연, 친분, 개인적인 정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그공만으로
기준을 삼아 논공행상을 실시 하였다 이런면에서 진문공은 상의 의미와 속성을 잘아는 군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개자추를 포상에서 빠뜨렸다 유랑시절 진문공이배고파 걸을 힘이 없을때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국을 끓어 바쳤던 충신이 아니던가 개자추는 산속으로 숨어 버렸다 진문공은 산속에 불을 놓으면 효성이 지극한 개자추가 모친을 살리기 위하여 모친과 함께 산속에 서 나올것으로 생각하고 산속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개자추는 산속에서 끝내 나오지 않고 불타 죽었다 그때 산에다 불을 지른것이 바로 3월 초닷새날이며, 절기로는 청명이었다 그래서 진나라 사람들은 개자추를 사모하는 뜻에서 그가 불에 타죽은 것을 잊지않기위해 해마다 3월이면 찬음식을 먹었다 그래서 청명 하루 전날이 바로 한식이된것이다
한식날에는 집집마다 문에다 버들을 꽃는다 버드나무아래서 타죽은 개자추의 영혼을 초혼하기 위해서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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