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몽유도원도

안평대군 - 筆 <記文>

정묘년 4월 20일 밤

 

내가 바야흐로 잠들려 할 즈음, 정신이 아련해지며 잠에 깊게 빠져들어 꿈에 이르렀다

 

홀연히 인수(仁搜)와 함께  어느 산 아래 이르렀는데, 산이 첩첩이 겹쳐 있고 골짜기가 깊어 산세가 험준하고

매우 넓은 모양이었다

 

복숭아꽃나무가 수십 그루 있고 그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고 숲 가장자리에 갈림길이 있었다

 

어느 곳으로 가야 옳을지를 몰라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우연히 산관야복(山冠野服) 차림의 한 사람을 만났다

 

예를 차리어 인사하며 내게 말하길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골짜기에 들어서면 곧 도원입니다"라고 하였다

 

나와 인수가 말을 채찍질하여 그 곳을 찾으니 절벽은 깎아지른 듯 섰고, 초목이 우거진 곳은 무성하고 울창하며,

 

계곡물은 굽이쳐 흘러 백 번이나 꺾이어 어느 길로 가야할 지 혼미 하였다

 

그 골짜기에 들어서니 동천(洞天)이 넓고 확 트여 2, 3리 정도 되어 보였다

 

사방에 산과 깎은 듯한 낭떠러지가 우뚝 서 있고, 운무(雲霧)가 자욱이 서려있고, 멀고 가까운 곳 복숭아나무 숲에는

햇빛이 비춰 노을이 일고 있었다

 

또 대나무 숲속에 있는 초가집은 사립문이 반쯤 열려 있고, 흙섬돌은 이미 부서졌고, 닭과 개, 소, 말은 없었다

 

동네 앞 시내에는 오직 작은 배 한 척이 떠 있어 물결 따라 왔다갔다 하니 쓸쓸한 정경이 마치 선부(仙府)와 같았다

 

이에 머뭇거리며, 오래도록 그것을 치어다 보며 인수에게 말하길

 

"암벽에 시렁을 걸고 골짜기를 뚫어 가옥을 짓는다 하는 것이 어찌 이것이 아니겠는가! 실로 도원동(桃源洞)이로구나" 라고 하였다

 

옆에 여러 사람이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정부(貞父), 범옹(泛翁) 등이 함께 운(韻)에 맞춰 시를 지었다

 

서로 신발을 정제(整齊)하고 오르내리며 좌우 주위를 돌아보고 마음이 가는대로 유유히 즐기다 홀연히 꿈에서 깨어났다

 

아아, 큰 도회 큰 고을은 실로 번화하여 고위 벼슬아치들이 노니는 곳이요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깊은 산골은 조용히 숨어사는 은자(隱者)가 거처하는 곳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푸르고 자줏빛 의복을 몸에 걸친 공경(公卿)들의 발자국이 산림에 이르지 못하고,

 

자연 속에 성정(性情)을 도야하는 자는 꿈에도 조정을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 고요함과 시끄러움은 길이 다르니 이의 이치는 필연적이다

 

옛사람이 말하길 "대낮에 행하는 바를, 밤에 꿈꾼다"라고 하였다

 

내가 궁중에 몸을 기탁하여 조석(朝夕)으로 일을 하는데 어찌 산림에 이르는 꿈을 꾸었단 말인가?

 

또 어찌 도원에 이를 수 있었단 말인가?

 

내가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많거늘, 하필이면 이 몇 사람만이 나를 따라 도원에서 노닐었단 말인가?

 

생각컨데 성향이 그윽하고 궁벽한 것을 좋아하며 본디 산수의 경치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고,

 

또한 이들 몇 사람과 교분이 특별히 두터운 까닭으로 이에 이르게 된 것일 게다

 

이에 가도(可度)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단지 예부터 도원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인지 알지 못하나 또한 이와 같지 않겠는가?

 

훗날 이 그림을 보는 자가 옛 그림을 구하여 나의 꿈과 비교한다면 반드시 무슨 말이 있을 것이다

 

꿈을 꾸고 사흘 뒤 그림이 이미 완성되었기에 비해당(匪解堂)의 매죽헌(梅竹軒)에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