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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연구

키원드 -진화

인간의 진화 5만 년 전에 멈췄나, 더 빨라졌나

갈릴레이 망원경 발명 400년, 다윈 탄생 200년. 더구나 24일은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 150년이 되는 날입니다. 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남다른 2009년입니다. 중앙일보와 ‘문지문화원 사이’는 과학교양의 대중화를 위해 ‘10개 키워드로 읽는 과학책’ 시리즈를 매달 연재합니다.


과학자들은 종종 쌀쌀맞다. 인간이 어떻게 진화할지 그들에게 물어보라. “아, 인간은 아주 오래 전에 진화를 멈추었습니다.” 건조한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진화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과학자 사이에 그간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약 5만 년 전 출현한 인류의 직계 조상인 크로마뇽인은 정교한 석기·장신구·악기 등을 남긴 완전한 현생인류였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장엄한 동굴벽화를 보라. 그 그림을 남긴 크로마뇽인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어엿한 현대인이었다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5만 년 전 출현했다고 추정되는 현생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 그들과 우리는 분류학상 모두 호모 사피엔스에 속할 정도로 비슷하다. 하지만 자연선택의 손길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그 속도는 더 빠를지도 모른다.

문화는 자연선택의 칼바람으로부터 인간을 든든히 보호해주는 방풍벽이라는 것이다. 항생제·안경·중앙난방·조제 인슐린·식료품·피임제 등이 넘치는 현대세계에서 자연선택은 더 이상 번식에 유리한 형질을 골라내는 체가 되지 못한다. 신종플루에 안 걸리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이 타미플루를 먹고 깨끗이 회복한 다른 사람보다 자식을 딱히 더 많이 남기진 않을 것이다. 시력이 좋은 사람이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는 사람보다 자식을 딱히 더 많이 남기지도 않을 것이다. 유전학자 스티브 존스(Steve Johns)는 100만 년 후에도 인류가 생존한다면, 그들은 현재의 우리를 꼭 닮으리라고 단언했다.

진정 인간의 진화는 멈춘 것일까? 분자인류학자 존 혹스(John Hawks)와 그의 동조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느려지거나 멈추긴커녕, 지난 600만년 동안의 평균속도에 비해 최근 1만년 동안 약 100배나 더 빨리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도발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면밀한 조사 끝에 적지 않은 수의 인간 유전자가 빠르게 자연선택되고 있음을 입증했다. 인간을 진화의 추월차선에 밀어 넣은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1만여 년 전에 농업이 시작돼 잉여생산물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600만 명에 불과했던 세계인구는 오늘날 68억 명으로 증가했다. 번식에 유리한 돌연변이는 아주 드물게 일어나므로, 돌연변이가 되도록 많이 생겨나려면 일단 사람의 머릿수가 많아야 한다.

둘째, 평균수명의 연장, 예상 밖 전염병 등 새로운 환경이 인류를 둘러싸게 되면서 자연선택의 영향력 또한 증폭됐다. 오히려 예전에 간과했던 형질을 새로이 선택하기 위해 진화의 가속페달이 힘차게 눌려지게 된다.

인류문화가 자연선택에 의해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한 사례는 젖당분해효소(lactase)에서 엿볼 수 있다.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은, 다른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유아기를 벗어나면 더 이상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지 않았다. 엄마가 주는 젖을 놓고 치사하게 젖먹이 동생과 다투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가축을 키우게 되면서 가축이 내는 젖은 모든 연령대의 사람에게 훌륭한 에너지원으로 다가왔다. 물론 유아기를 지나서도 젖당을 분해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결국 약 8000년 전 어른이 돼서도 젖당분해효소를 계속 만드는 돌연변이가 처음 발생해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지금 덴마크인이나 스웨덴인의 95% 이상은 젖당분해효소가 있어서 우유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소젖에 상대적으로 덜 의존했던 우리나라에선 우유를 먹으면 설사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50년 전 11월 24일,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했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 연구성과에 따르면 인간은 문화를 습득한 이후 유전적 진화 속도 또한 한층 더 빨라졌음이 드러났다. 진화의 추월차선에서 달리고 있는 인류는 과연 어떻게 바뀌어 갈까? 문화와 생물학을 매끄럽게 통합하는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인류의 어둠 밝힌 전구, 생체 리듬엔 그늘이더라

갈릴레이 망원경 발명 400년, 다윈 탄생 200년. 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남다른 2009년입니다. 근대 과학혁명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중앙일보와 ‘문지문화원 사이’는 과학 교양의 대중화를 위해 ‘10개 키워드로 읽는 과학책’ 시리즈를 매달 연재합니다.


솔방울처럼 생긴 콩알 크기의 기관이 두개골 깊숙이 묻혀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 헤로필루스가 사고의 흐름을 조절하는 기관이라고, 2000년 뒤 데카르트가 정신과 몸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지목했던 ‘송과선’이다.

이토록 철학자의 많은 관심을 받았음에도 송과선의 기능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 우리 몸 속에 내장된 시계를 지배·조절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생체시계’는 24시간의 자전주기, 1년의 공전주기를 갖는 지구라는 특수한 환경에 생명체가 수십 억 년에 걸쳐 적응한 결과다.

한번 살펴보자. 우리는 지구의 자전주기에 맞게 깨어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이 든다. 밤낮의 변화를 전혀 알 수 없는 깊은 동굴 속에서 지내더라도 거의 24시간 주기로 자고, 깨어나, 활동한다는 것도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최근에는 생체시계를 구성하는 ‘시계 유전자’까지 발견됐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마다 하나씩 분자시계가 들어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됐다.

부산 감만 부두의 야경. 밤낮 없이 일하는 당신, 하지만 당신은 지구 행성에 사는 생명체란 걸 명심해야 한다. 당신의 몸 속엔 지구의 24시간 자전주기에 맞춰 진화해 온 ‘생체시계’가 작동한다. 문명의 선물인 ‘전구’는 생체시계를 교란해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중앙포토]

생체시계는 건강과 직결된다. 이를 알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루 중 어느 시간에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지, 신체활동에 좋은 시간은 언제인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아이를 갖기에 좋은 시간, 수면을 취해야만 하는 시간도 고를 수 있다. 뇌경색·천식·관절염·심근경색·중풍 등 숱한 질병은 특정 시간대에 주로 발병하기 때문에 이에 대처할 수도 있다.

예컨대 류머티스성 관절염은 동틀 무렵에, 골관절염은 해질 무렵에 증세가 심해진다.

생체시계의 시간표를 무시했을 때, 그 대가는 가혹하다. 수면장애는 물론 우울증·조울증 등 각종 정신질환이 일어날 수 있다. 생체시계가 만성적으로 교란되거나 시계 유전자가 망가진 경우 암·비만·2형 당뇨·심혈관질환·노화 등 갖은 병리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최근 연구도 있다. 생체시계를 지키는 것만으로 여러 성인병을 획기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생체시계 연구는 여러 면에서 유용하다. 항암제는 어느 시간대에 투여해야 가장 효과가 좋으면서도 부작용이 적을까, 왜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피부가 상하고 감기에 잘 걸릴까, 체르노빌 원전사고 같은 대형 참사를 막으려면 교대근무의 스케줄은 어떻게 짜야 할까, 짧은 해외출장 중의 중요한 회의는 몇 시로 정해야 할까, 등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다.

현대인의 생체시계를 망가뜨린 주범은 전구다. 19세기에 발명된 전구는 인류의 문명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자 비극의 씨앗이다. 일례로 전구의 발명으로 인간은 캄캄한 밤에도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또 인공조명의 보편화로 대도시 중심의 ‘24시간 사회’가 일상화됐다.

하지만 교대근무, 야간근무, 과로와 수면부족, 대륙 간 여행 등에 따른 생체시계 교란과 20세기 후반 성인병의 만연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아시는지.

대도시의 불빛은 생태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수십 억 년 진화의 역사를 갖는 생체시계와 고작 수백 년 간 발달한 과학문명이 충돌해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빛 공해’가 미칠 파장과 그 병리적 귀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때다.

생체시계에 대한 최근 연구는 빛 치료, 어둠 치료, 각성 치료 등 ‘시간치료’라는 획기적인 개념도 만들어 냈다. 생체시계와 질병 사이의 놀라운 연결성이 조목조목 규명된다면, 우리 모두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복잡계 허브’ 찾아 신종 플루 잡는다
갈릴레이 망원경 발명 400년, 다윈 탄생 200년, 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남다른 2009년입니다. 근대 과학혁명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중앙일보와 ‘문지문화원 사이’는 과학 교양의 대중화를 위해 ‘10개 키워드로 읽는 과학책’ 시리즈를 매달 연재합니다.

신종 플루(H1N1)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보건당국은 전국민의 약 27%에 해당하는 1336만 명에게 백신을 예방 접종할 계획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겨우 4명 중 한 명 꼴인 1336만 명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현재 고위험군의 윤곽은 잡혔지만 세부적 우선순위는 10월 열릴 예방접종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네트워크 과학이 이 쉽지 않은 퍼즐을 푸는 데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복잡계 과학으로 푸는 ‘방역 퍼즐’=상황은 다르지만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백신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직 뚜렷한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지만 에이즈 백신이 개발됐다고 가정하자. 재료·비용 등의 이유로 전체 인구의 1%만이 백신을 접종 받을 수 있다고 할 때, 누구에게 접종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까.

에이즈는 많은 경우 성관계를 통해 전파된다. 따라서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이 많은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카사노바 같은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접종을 하는 것이다. 임의의 사람에게 무작위적으로 접종하는 것보다 당연히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카사노바를 어떻게 알아낼까. 프라이버시 때문에 개개인에게 카사노바인지를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다행히 최근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라는 개념 하에 구성성분 사이의 연결관계를 통해 전체시스템을 이해하려는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고도 친구가 많은 카사노바를 간접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됐다. 2003년 12월 이스라엘의 물리학자 슐로모 하블린이 이끄는 그룹이 물리학계 최고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에 발표해 학계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친구치료(acquaintance immunization)’라는 방법이다. 임의로 사람을 골라 그에게 백신을 주면서, 그 사람 대신 그의 ‘섹스 파트너’ 중 한 사람에게 백신을 주사하라고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면 섹스 파트너가 많아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하는 카사노바가 자연스럽게 치료 받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카사노바에게 백신이 효율적으로 전달되는 셈이다. 이렇듯 네트워크 과학을 이용하면 효율적으로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질병 확산 방지 ‘허브’를 찾아라=신종 플루의 경우는 어떠할까. 신종 플루는 카사노바를 통해 전달되지는 않지만 활동이 많고 여러 사람과 접촉하는 허브가 감염되었을 때 그 전파력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클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통신과 교통시설의 발달로 개개인의 평균 이동거리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세계적인 항공망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인 1918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의 경우는 그 전파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렸지만 1차 세계대전 중 대량으로 수송된 군인들에 의해 전세계로 전파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누구나 비행기를 타고 전세계 어느 곳으로든 거의 하루 안에 이동이 가능한 글로벌 시대다. 요즘 시대엔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는 환자수와 감염지역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물론 전염병 확산을 막을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다. 복잡계 네트워크 연구그룹의 최근 논문에 따르면, 각 도시별 항공편수와 승객수의 통계분석을 통해 사스(SARS)와 신종 플루의 전염지역 및 환자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격리치료·휴교·여행제한 등의 각 전략이 전염병 전파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지를 시뮬레이션했다.

스웨덴의 인구분포와 이동량에 근거한 연구에선 여행지역 제한조치를 내릴 경우 반경 50㎞ 이내만 여행하도록 제한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구체적인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대인 접촉과 활동량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IT강국답게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발달로 개개인의 거의 모든 정보가 디지털로 시시각각 저장되고 있다.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러한 다양한 정보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지역을 선정하고, 그 지역을 많이 돌아다니는 사람을 선택해 백신을 접종할 수 있지 않을까. 신종 플루의 확산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고민할 때다.

정하웅 KAIST 물리학과 교수



효모의 단백질 상호작용 네트워크

효모의 단백질 상호작용 네트워크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복잡계 그림으로 전환했다. 단백질은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동그란 알갱이가 개별 단백질이다. 개별 단백질이 선별적으로 뭉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연결선으로 표현했다. 실험 결과 많은 수의 연결을 갖는 단백질일수록 세포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림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단백질을 제거하면 세포가 죽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다른 단백질과 많이 연결돼 있다. 초록색 단백질은 네트워크의 수가 많지 않아 떼어내도 세포가 생존하는 경우다. 오렌지색 단백질을 제거하면 세포가 성장장애를 보였다. 노란색은 미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