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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연구

키워드-물질과 영혼

갈릴레이 망원경 발명 400년, 다윈 탄생 200년, 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남다른 2009년입니다. 근대 과학혁명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중앙일보와 ‘문지문화원 사이’는 과학 교양의 대중화를 위해 ‘10개 키워드로 읽는 과학책’ 시리즈를 매달 연재합니다.


마음(mind)은 어디에 있는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주장했다. 판타지 모험소설 『오즈의 마법사』(1900)도 그 유산 중 하나다. 양철나무꾼은 마음을 찾기 위해 심장을 원했다. 프랑스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는 ‘영혼의 자리(seat of the soul)’에 집착했다. 그는 몸과 마음이 별개로 떨어져 있고, 당시의 해부학적 지식에 기반해 뇌의 송과선(pineal gland·좌우 대뇌 사이에 있는 내분비 조직)에서 마음과 몸이 만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송과선은 밤낮의 생체리듬에 관여하는 조직이다.

뇌와 마음이 관계가 있다고 어렴풋이 알던 시절, 사람들은 뇌의 모양과 마음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고도 생각했다. 19세기에 크게 유행했던 골상학(phrenology)이 대표적이다. 두개골이 뇌의 모양을 따라 형성되기 때문에 두개골의 형태로 마음의 성향을 유추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호전성은 귀 뒷부분에, 기억력은 앞통수에, 자녀에 대한 사랑은 뒤통수에 있다고 봤다. 이후 해부학이 발전하면서 두개골의 모양과 뇌와 형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져 골상학은 과학적 지위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마음의 성향이 뇌의 일부에 있다는 생각은 현대 신경과학에도 계속되고 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보고, 듣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모든 일이 뇌의 활동에 의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보이는 사물의 정체와 위치는 색채·형태·움직임·깊이감 등을 다루는 신경회로에 의해 동시에 처리된다. 이 신경회로가 손상되면 세상이 하룻밤 사이에 무채색으로 변할 수 있다. 또 물을 따르거나 자동차가 다가올 때 그 움직임을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뇌와 마음의 관계를 거꾸로 생체실험에 이용할 수도 있다. 예컨대 살아있는 바퀴벌레의 운동피질을 전기적으로 자극해보자. 바퀴벌레를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척추 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된 환자가 자신의 운동피질에서 생성되는 뇌 신호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이고 TV나 로보트 팔을 작동시키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도 공상과학 소설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뇌가 관여하는 것은 감각과 운동뿐이 아니다. 좀더 고차원적인 정신활동도 뇌의 특정 부위에 있다. 뇌의 우측 후두정엽이 손상된 환자는 왼편에 무관심해진다. 이들은 옷을 입을 때 왼쪽 팔을 소매에 끼우지 않는다. 립스틱도 입술 오른쪽에만 바른다. 꽃을 그리라고 하면 반쪽만 그린다. 그러면서 뭐가 이상한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종교적 체험을 할 때 뇌의 측두엽에서 과격한 활동이 일어난다는 증거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뿐. 아직도 미스터리는 많다.

◆감추어진 ‘마음’을 찾아서=미스터리는 뇌의 특정 부위에 국한되기 힘든 복잡한 정신활동과 관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의식이다.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많은 감각 정보가 어떻게 통합돼 대상을 통일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장면처럼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냄새가 어떻게 잊혀진 기억을 순간적으로 떠오르게 만들까. 의식하고 있다는 자각, 과거와 현재를 통해 일관된 ‘이것이 나다’라는 의식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신경과학은 이런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살아 있는 사람의 두개골을 절개해 뇌를 열고 수많은 전극을 꽂아 생활을 24시간 모니터하며 전체 뇌의 활동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아직 윤리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놀라운 연구기법이 개발돼 과학자들이 신경활동을 완벽하게 알아낸다 하더라도 철학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단지 신경활동에 불과한 것이 어떻게 맛·촉감·만족감과 같은 생생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시각·후각·촉각 등에 해당되는 외부 입력장치를 완벽하게 갖추면 로봇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생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정신분열증 환자가 보고 듣는 환상은 현실적 토대가 전혀 없다. 정상인이 매일 꾸는 꿈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제 마음이 물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만으론 마음의 물질적 토대를 온전히 증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신경과학자들은 방법만 알아낸다면 가능하다고 믿으며, 오늘도 뇌에 전극을 꽂는다.

우주 공학은 신기술 개발의 저수지랍니다

갈릴레이 망원경 발명 400년, 다윈 탄생 200년, 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남다른 2009년입니다. 근대 과학혁명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중앙일보와 ‘문지문화원 사이’는 과학 교양의 대중화를 위해 ‘10개 키워드로 읽는 과학책’ 시리즈를 매달 연재합니다.

착륙 40주년인 올해는 우주 진출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변곡점(變曲點)처럼 보인다.

다음 달에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나로호(KSLV-I) 발사가 성공하면, 위성 자체발사에 성공한 국가가 21년 만에 2개국이 늘어 10개국이 된다. 올 2월엔 이란이 발사에 성공했다. 21세기 들어 매년 50개 정도로 줄었던 새 인공위성 숫자도 2007년 뒤론 80여 개로 증가했다.

◆인공위성 걸음마 시대=현재 운영 중인 인공위성은 900개에 이른다. 이 중 40% 가량은 3만6000㎞ 상공의 정지궤도 상의 통신위성이고, 50%는 2000㎞ 이하 저궤도에 머물러 있다. 저궤도 위성을 포함해 540여 개의 위성이 어떤 형태로든 통신·방송용으로 사용된다. 나머지도 대부분 지구를 관찰하는 안보·상업·과학 위성이다. 우주 자체의 탐사나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위성은 고작 수십 기에 지나지 않는다. 허블 망원경, 국제우주정거장과 다른 행성으로 보낸 위성까지 포함해서다. 지구가 사랑방이라면 위성들의 절대 다수는 툇마루에서 방안을 들여다보 는 상황인 셈이다. 우주 탐사라기 보단 지구 탐사 수준인 것. 이를 두고 인류가 우주도 활동무대로 삼았다고 할 수 있을까?

21세기에는 우주도 인류의 생활의 터전이 되리라는 꿈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우주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그럴 것 같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위성궤도에 물체를 올려놓기 위해선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주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인 로켓 발사체의 에너지 효율은 너무 낮다. ‘나로호’를 보면 알 수 있듯 100㎏짜리 소형 위성을 우주에 올려 놓는 데에도 무려 33m 규모의 로켓 발사체가 동원되는 식이다.

대한민국에 우주시대를 열어 줄 전라남도 고흥 나로우주센터 위로 달 궤적이 지나가고 있다. [중앙포토]
◆우주엘리베이터가 대안?=물자를 대량으로 위성궤도까지 올려 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우주 엘리베이터’ 구상이 유명하다. 3만6000㎞ 상공의 정지위성을 기준으로 지상까지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케이블을 늘어뜨리고 우주 공간 위쪽으론 적당한 균형추를 연결시킨다. 케이블이 정지위성을 지상으로 끌어당기는 힘과 우주 공간에 있는 균형추의 원심력이 서로 균형을 이룬다. 지상에서 우주공간까지 일종의 ‘바벨탑’이 세워지는 것. 이 케이블로 된 ‘바벨탑’을 타고 승강기가 지상에서 우주까지 오르내린다.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100% 효율을 가정한다면, 60㎏의 화물을 3만6000㎞ 상공의 우주 공간까지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최소 에너지는 약 840kWh. 한 가구의 두어 달 전기사용량 정도에 불과하다.

이 ‘우주 엘리베이터’의 1회 건설비용은 현재 6조원 내지 20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대단히 낙관적인 기대다. 케이블의 보수·관리 비용 자체가 매번 신규 건설비만큼 들 수도 있다. 실제 건설에 들어가면 처음 추정한 비용이 몇 배로 불어난다. 한 해 약 4조원 규모의 우주 발사체 시장으론 이렇게 거대한 장기투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지금이 우주개발 참여의 적기=계획대로라면 한국은 2010년대 말에 지금의 인도처럼 정지위성이나 소형 달 탐사선을 발사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잘하면 21세기 중엽엔 러시아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갖출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말고도 브라질 등 7~8개국이 위성발사체를 개발 중이라 경쟁이 치열하다. 그럼에도 지금 우주개발에 뛰어들 필요는 있다. 우주공학은 목적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신기술 개발을 낳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우주개발의 새로운 기술적 대안들이 검토되는 변화의 시기다. 한국 같은 후발주자가 끼어들기에는 좋은 기회다. 위성 제작 및 발사 능력은 안보 자산이기도 하다.

우주가 삶의 터전이 될 날이 멀더라도 우주활동 능력은 곧 지상에서의 능력이다. 한국의 관측선이 영하 180℃의 타이탄(토성의 위성) 메탄바다를 누빌 때를 상상해 보라. 이 때 동원된 기술들이 가져올 지상의 변화는 엄청날 것이다.
컴퓨터 자판의 배열은 기계식 타자기 시대의 산물이다. 21세기 컴퓨터의 진화도 19세기 타자기의 ‘손바닥’ 안에 있는 셈이다. 1870년대에 특허를 얻어 영문자판의 ‘표준’이 된 ‘QWERTY 자판’에선 자주 쓰이는 모음 ‘a’를 새끼 손가락으로 쳐야 하고 타자 속도가 늦는 등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기계식 타자기 시절에는 빠르게 타자를 칠 경우 활자 막대가 서로 엉켜 버리는 문제를 막아야 했기 때문에 고안된 자판이다. 기계식 타자기가 퇴역한 지금, 이런 자판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도 우리는 QWERTY 자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기본 틀 안에서 다른 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성선설·성악설은 고대사회 현자들의 철학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이타성, 평등에 대한 집착 등은 어떻게 발생한 걸까. 아무런 이득이나 명예도 바라지 않는 익명의 기부자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현대의 진화론은 인간의 본성, 그 자체를 해명하고자 한다. [중앙포토]

이는 마치 ‘판다의 엄지 손가락’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이미 모든 손가락이 한 방향으로 발달해 버려 무언가를 쥐기 어려웠던 판다는 손목 근육을 발달시켜 엄지를 대신하도록 진화했다. 이렇게 진화론은 경제 및 사회 현상과 그 변화과정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인간성의 진화’를 실험하다=인간 본성을 둘러싼 논의도 진화론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구체적 이득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익명의 거액 기부자들, 자원 봉사의 손길,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삶을 바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실험도 있었다.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변수를 만들어 진화론적인 게임을 구성해 컴퓨터로 이 게임을 수백 만 번 반복시켰다. 그랬더니 같은 집단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이타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보이는 성향이 진화하기도 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성향을 갖게 되었을까? 이는 사회 문화적으로 구성됐다기보다 혹독한 환경과 생존 경쟁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체화해 온 성향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도 다른 사회와 문화들 사이에서도 인간의 공통된 성향이 드러난다는 것을 설명하기 힘들다.

◆‘본성’은 유전자와 문화의 칵테일?=인간의 본성을 연구한다는 것은 사회생물학자들이 주장하듯 인간 행동의 유전적 기초를 밝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데올로기·권력·문화 등이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는 구조다. 생물학적 기초만으로 인간 행동과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우리 조상들이 쌓아올린 제도와 문화는 인간이란 종(種) 자체의 진화 방향을 바꾸는 데 기여했을 수 있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성년이 된 인간이 우유를 먹기 시작한 것은 길게 잡아야 1만1000여년 전이다. 인간이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던 때부터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이처럼 다른 종들에선 수 백 만년 걸릴 일이 인간에게는 불과 수만, 수천년 만에 달성되는 경우가 있다.

인류가 다른 종들에 비해 유독 넓은 범위로 이타성을 발휘하고, 형평성과 평등에 집착하는 이유도 인간이 축적해 온 제도와 문화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천사와 악마’에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등장한다. 이 연구소에서 훔쳐 낸 강력한 반(反)물질로 바티칸을 날려 버리려는 음모에 종교기호학 교수(톰 행크스)가 맞선다는 내용이다. CERN에서 지난해 스위스 제네바 인근에 준공한 것이 ‘거대 강입자 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LHC)’다. 지하 100m 아래에 둘레 27㎞의 거대한 터널을 묻고 이 안에서 양성자를 가속하고 충돌시켜 궁극의 물질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건설비용만도 10조 원이다.

미국에선 이것의 3배나 되는 ‘초전도 초대형 입자 가속기(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SSC)’를 추진하기도 했다. 냉전 종식과 경제 불황 등을 이유로 1993년 건설 도중 취소됐다. 인천국제공항을 건설할 때 쓴 사업비가 넉넉히 잡아도 8조 원에 못 미치니 가속기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이름도 생소한 가속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물을 잘게 쪼개다 보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입자를 만난다. 가속기는 이 입자들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다른 입자를 때리는 장치다. LHC에서는 양성자가 서로 초당 10억 번 충돌한다. 가속된 입자의 에너지가 클수록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가속기가 만들어 내는 상황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과 사뭇 다르다. 거대 가속기가 태초 우주의 모습을 재연할 것이라고도 하고, 미니 블랙홀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궁극의 물질을 찾을지도 모른다. 원자폭탄을 통해 물리학의 힘을 알게 된 열강들은 더 높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막대한 가속기 건설비를 감당해왔다. 하지만 이는 헛된 환상에 기초한 낭비는 아닐까?

포항 방사광 가속기에서 나오는 X선이 형광물질 스크린에 비치고 있다. 이 X선은 병원에서 흔히 보는 X선보다 수억배 이상 밝다. 이를 동물에 투과시키면 살아 있는 그대로의 내부 모습을 볼 수 있다. X선이 반사돼 산란되는 패턴을 분석하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도 알아낼 수 있다. [중앙포토]

물론, 가속기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얻는 부산물에서 생각지 못했던 쓸모를 찾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가속된 입자에서 나오는 엄청나게 밝은 X선이다. X선을 쏘았을 때 투과하거나 튕겨져 산란되는 패턴을 보면 물질의 구조를 알 수 있다. DNA의 구조를 밝힌 것도 이런 방식이었다. 강력한 X선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가속기를 방사광가속기라고 한다. 현재는 4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세계 여러 곳에서 건설되고 있다. 처음 DNA의 구조를 보여준 X선보다 1억 배의 1조 배 정도 더 밝은 X선 레이저를 만들 수 있는 가속기다.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레이건 정부는 이를 전략방위구상(SDI)의 일환으로 검토했었다. 초대형 가속기에서 나오는 X선 자유전자 레이저로 인공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격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가속기 연구의 ‘부산물’로 얻은 가장 강력한 ‘무기’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일지도 모른다. CERN이 개발한 이 기술은 무상 공개돼 오늘날 인터넷 시대를 열었다. 만약 이 기술을 돈 주고 팔았다면 초대형 가속기 10개 쯤은 너끈히 지었을 거란 말도 있다.

최첨단 가속기 1기의 건설에는 한 국가의 과학예산과 맞먹거나 훌쩍 뛰어 넘는 돈이 필요하다. 가속기 건설을 둘러싼 논의는 이제 과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납세자 전체의 문제가 됐다. 한국도 현재 중이온 가속기와 4세대 방사광 가속기 건설을 시도하고 있다. 비용은 조 단위로 추산된다. 당신은 우주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수십조 원을 쓰는 데 동의할 수 있는가? 비용도 좀 적게 들고 여러 산업·기술 분야에 쓸모도 많은 방사광 가속기 정도는 괜찮은가? 현대의 거대과학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