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장 초기 조상은 원숭이를 닮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엄청난 양의 식물을 소화시키는 데 커다란 창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배가 불룩 나왔고 거친 식물을 갈고 으깨기 위해 치아가 크고 납작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숲에서 나와 동물들을 사냥해 육식을 시작했다. 육식을 하게 되면서 약 230만년 전 치아가 날카로워지고 뇌가 30%가 커진 호모 하빌리스가 탄생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18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의 등장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뇌는 더 커지고 턱과 이가 작아졌으며 팔의 길이는 짧아지고 다리가 길어지는 등 현대인과 비슷한 모습을 갖게 됐다. 이제 식물 소화를 위한 커다란 내장은 필요없게 됐다. 호모 에렉투스는 직립보행 뿐아니라 뛸 수도 있었고 요리도 할 수 있었다. 랭햄 교수는 "요리를 하면서 내장이 클 필요가 없어졌다"며 "내장이 작으면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녀를 많이 낳을 수 있으며 생존하기가 더 쉽다"고 설명했다.
우주 만유의 근원이 태극이고, 우주의 중심이 나의 중심이요, 나의 주체가 즉 남의 주체이므로 나와 남의 주체성과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한민족이 통일할 원리 뿐 아니라 온인류가 살아갈 원리가 담긴 태극기의 뜻’을 설명했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장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 등을 지내면서
백성이 첫째요, 국가는 둘째요, 그 다음이 군주
“군주봉건시대에도 백성을 위한 왕도정치가 있고, 폭압하는 패도정치가 있다. 충(忠)은 덕을 가지고 마음으로 따르게 하는 것이다. 폭력으로 인권을 억압할 때는 혁명을 인정하는 것이 유학이다.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노예해방에 수백년 앞서 세종대왕은 백성을 천민(天民)이라면서 ‘백성 한명 한명은 하늘이 낸 것이기에 누구도 그들의 인권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했고, 율곡 이이는 ‘성인과 보통사람이 인간의 본성으로는 한가지’라면서 인간평등과 노예해방을 주장했다. 유학에선 백성이 첫째요, 국가는 둘째요, 다음이 군주다. 백성과 국가가 없고서는 군주도 있을 수 없다.”
“문제가 있으면 ‘시비이해’를 따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옳으냐, 그르냐는 시비를 가리는 데 치중했다. 서양과 일제가 의(義)를 앞세우고 왔는가. 그들은 군함과 총칼을 앞세우고 왔다. 무력에 무릎 꿇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하는데도 이해를 보지 못하고 시비만 따지고 있었으니,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옛사람만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옛사람들은 시비에 치중했고, 오늘날은 오직 내게 이익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하는 이해득실만 따진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딱 들어맞는 것, ‘거시기’로 표현
그가 세계적인 세미나들의 기조강연에서 제시해 주목을 받은 인류문명의 변천사와 미래는 명료하다. 그는 과거를 동양적 가치가 지배한 전근대적 군주봉건사회와 서양적 가치가 지배한 근대적 민주공화사회로 변화해왔다고 본다. 신분사회에서 대중인권사회로, 종교중심사회에서 과학중심사회로, 신 중심에서 물질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창조해가야 할 다음 세상이다. 그는 탈근대사회를 인간생명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시대가 될 것으로 보았다. 신(하늘)과 물질(땅)이 조화를 이루고, 동양과 서양의 사상이 회통되어 동서화합의 대동사회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정신이 인류의 미래사회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유대인들도 자신들만이 선택받기로 약속받았다고 믿고, 중국인들도 동서남북을 모두 야만과 오랑캐로 멸시하고 자기들만이 중심이라는 중화주의인데 반해 인간들을 불쌍히 여겨 모든 인간을 돕고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재세이화 정신의 뿌리 속에서 한번도 먼저 남을 침략한 적이 없는 상생의 평화로움이야말로 살육과 전쟁으로 점철된 인류문명에 빛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민족의 시원인 환웅이 환인으로부터 받아가지고 왔다는 천부인(天符印)을 그 빛으로 제시했다. 많은 이들이 천부인을 청동검과 청동거울, 청동방울로 추정하곤 했다. 하지만 류 선생은 “그게 아니다”고 했다. 그리고 옆에 놓여있던 종이 한장을 둘로 찢었다.
“둘을 맞추려면 한쪽이라도 없어서는 안된다. 한쪽을 잃어버리면 반쪽을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아귀가 딱 들어맞지않는다. 주몽이 아들 유리와 헤어질 때 징표로 준 검을 맞춘 것처럼, 평강공주와 온달과 헤어질 때 준 거울 한쪽을 나머지 한쪽과 맞춘 것처럼, 양쪽 것이 모두 있어야 딱 들어맞는다. 이렇게 맞는 것이 부(符)다. 하늘에서 내려주어 딱 들어맞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늘을 상징하는 형이상학, 그리고 하늘의 정신과 다른 땅의 물질과 육신을 상징하는 형이하학, 그런 천(天)과 지(地)에 이은 인(人), 인간의 도(道), 이 세가지가 천부인이다.”
그는 서양의 학문은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전통에선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렇게 딱 들어맞는 것, 즉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추구했기에 ‘묘(妙)한 도(道)’라거나 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기에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인도를 모두 닮은 그것을 설명하면서 그냥 ‘거시기’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는 하늘의 도와 땅의 도, 인간의 도 등 천부인, 세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후천의 성인이 될 수 있다면서 그럴 때 정신세계만 갖춘 자가 아니고 정신세계와 함께 육체적 건강을 지니고,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인격적으로 훌륭하며, 예술세계도 구현할 수 있는 인간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사랑할 수 밖에 없다”며 금새 눈물 글썽
그는 “성인들이 지금이라면 지금 상황에 맞는 말씀을 하겠지만, 그들의 말이 꼭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폄하할 수 없는 것”이라며 “원숙해지는 가을의 결실기가 올 수 있는 것도 공자, 석가, 예수가 씨를 뿌린 봄과 성장한 여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후천(後天)시대를 열 수 있는 것도 선천(先天)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옛것에서 배우고 창조적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공부심이 끝이 없는 그는 며칠 전에도 새벽 4시부터 10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앉아 명상을 했다. 그 때 불현듯 성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의 본의가 가슴을 달구었다. 인간은 설사 원수라 하더라도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늘의 마음, 즉 나와 똑같은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100% 천부 인권을 가지고 있다.
보카치오나 라파엘로가 활동한 15세기 르네상스와 갈릴레오나 뉴턴으로 대표되는 17세기 과학혁명 사이에 존재하는 16세기에는 탁월했던 인물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천재들이 주도했던 15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과학혁명 사이에 존재했던 16세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이 책은 그간 역사가들에게 홀대 받던 16세기를 과학사적 의미에서 재평가했다.
저자는 그 기간중 17세기를 준비하는 지식 세계의 거대한 지각변동, 즉'16세기 문화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갈릴레오, 뉴턴 등 17세기 천재들이 남긴 혁혁한 업적과 18세기 산업혁명은 16세기 문화혁명이라는 지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히말라야 산맥론이다. "세기의 지붕이라고 하는 히말라야 산맥에는 초모랑마나 안나푸르나 등 고봉들이 우뚝 솟아있다. 그러나 그들은 저마다 고립된 상태에서 그처럼 높은 봉우리를 자랑하고 있는게 아니다. 바다 밑에 있던 지반의 대규모 지각변동 결과 생겨난 것이 히말라야 산맥의 고봉들이다
'미래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주의 일년 (0) | 2010.02.27 |
---|---|
문명의 전환 (0) | 2010.02.27 |
utopia냐, eutopia냐 (0) | 2010.02.23 |
미래학이란 무엇인가 (0) | 2010.02.23 |
짐테이토 (0) | 2010.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