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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연구

확실성의 종말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20세기 물리학의 대혁명을 가져 온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등 결정론적 자연법칙을 거부하고 불안정성과 요동을 고려 새로운 자연 법칙이 정립될 수 있음을 주장한 과학서.

목차

001. 새로운 합리성
002. 에피쿠로스의 딜레마
003. 단순한 환상
004. 확률로부터 비가역성으로
005. 카오스의 법칙
006. 뉴턴의 법칙을 넘어서
007. 양자론의 통합
008. 자연과의 대화
009. 시간은 존재에 앞서는가
010. 좁은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차이에 대한 논쟁만큼이나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상
호간의 메타포 교환도 오래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이 스미스와 맬더스의 고전
정치경제학의 영향을 받았고, 생물학에서의 진화론에 대한 기계적 이해가 스
펜서의 사회생물학을 낳았다. 이러한 가능성들이 화학자 프리고진을 한 사람
의 철학자, 사상가로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준다. 프리고진 자신도 근
대적 분과학문의 체계를 비판하는 괼벤키안 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
으며(『사회과학의 개방』을 보라), 자신의 저서 곳곳에서 화이트헤드, 베르
그송, 포퍼, 하이데거 사상과의 연관성을 드러내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주목할만 하다.

『확실성의 종말(La Fin des Certitudes)』에서 프리고진이 우리에게 던지
는 화두는 바로 '시간'이다. 그간 번역되어 우리에게 소개된 『혼돈 속의 질서
(Order out of Chaos)』나 『있음에서 됨으로(From Being to Becoming)』에
서 나타난 '시간의 비가역성'이라는 개념을 극한까지 끌고가, 여타의 자연과학
의 영역과 특히 우주론으로까지 확대시킨다.
엔트로피의 법칙(열역학 제2법칙) 속에 내재하는 비가역과정은 자연세계에
서 흔히 볼 수 있다. '화학이나 지질학, 우주론이나 생물학 심지어 인문과학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미래와 과거는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확실성의 종말,
12쪽)'. 비가역 과정은 자생적 조직화(Self-organizing)와 무산구조(소산구조,
dissipative structure)를 낳게된다. 이는 프리고진의 비평형 열역학 연구에서
비롯되는 개념으로,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미시적 수준에서의 요동
이 갑자기 거시적 규모의 열역학적으로 안정한 질서를 가진 무산구조로 발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 비가역성)'을 인
정함으로써, 현대과학의 바탕이 되어왔던 뉴턴의 고전역학과 이를 대체한 20
세기의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결정론적 한계를 넘
어, 우연 또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새로운 자연법칙을 정립할 수 있다는 것이
프리고진의 주장이다.
'새로움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법칙에 지배되는 세상의 개념과, 주사위
놀이를 하는 신으로 상징되는 아무것도 이해할 것이 없는 괴상하고 인과성도
없는 세상의 개념 사이에 있는 좁은 길을 찾는 것이다.'(확실성의 종말, 203
쪽)

프리고진의 사고를 통해 우리는 최근의 일부 포스트모던한 사조들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무조건적인 해체와 탈중심화가 아니라, 복잡성, 다양성 속에
존재하는 '질서'를, 질적으로 다른 개체들의 무작위적인 움직임 속에 존재하는
거시적인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우연과 필연의 문제에 직면하여 뉴턴 이래의 근대 자연과학이나 데카르트
적 근대철학은 모두 인과관계를 단선적으로 사고하였다는 점에서 기계론적이
고 결정론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부르주아적 근대철학에 대항하여
진보적 이론을 대표했던 맑스주의 역시 이에 자유롭지 못하다. 변증법이 지
니고 있는 변화와 다양성에 대한 열린 가능성들은 이후의 목적론적이며 교과
서적인 유물론(?)철학 속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만다. 프리고진은 새로운
'자연변증법'의 논리를 통해 해체와 질서, 우연과 필연, 주체와 구조의 문제를
반추해 보게끔 한다. 여기서 맑스주의를 위한 철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알
튀세르의 '마주침의 유물론', '우발성의 유물론'과의 우발적인(?) 마주침을 발
견하게 되는 것은 얼치기 사회과학도의 섣부른 판단일까?
'우연성을 필연성의 양상 또는 필연성의 예외로서 사고할 것이 아니라, 필
연성을 우연적인 것들의 마주침의 필연적 생성으로 사고해야 합니다.' (알튀
세르, 철학에 대하여, 43쪽)

확실성의 종말
일리야 프리고진

이 책은 제가 읽은 과학관련 도서 중 아마도 가장 최근의 과학혁명의 한부분을 얘기하고있는 책이 아닌가 합니다. 혁명이라면, 여러번 언급했던, 갈릴레이, 뉴턴, 볼쯔만,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그 등등 이겠죠. 그리고 이 책에서 일리아 프리고진 또한 새로운 혁명적 사건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좋은 점은 위에 언급했던 혁명에 대해서는 그 이론을 만들 사람이 쓴 책이 아닌 후대의 과학자나 저술가가 쓴 것이었는데 반해, 이 책은 새로운 혁명을 주도했던 프리고진 자신이 쓴 책입니다. 덕분에 미분 방정식들이 난무하기는 하지만, 핵심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는데는 좋았던 걸로 생각됩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전공한 열역학의 비가역성과 엔트로피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자연현상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비가역성을 인정하는 비대칭 물리학을 이용하면,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사이의 괴리, 그리고 양자역학내에서의 패러독스, 그리고 카오스 이론의 의미에 대해서 포괄적인 설명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가지 핵심 내용을 짚어보면, 시간의 문제부터 시작을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고전역학 이론들은 결정론적이라고 합니다. 초기조건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대상물이 있으면 그 물체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죠.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배운 포탄의 운동거리라던가 속도 궤적들을 초기조건만 이용해서 모두 구할 수 있는 것 처럼이요. 그러면, 항상 고민이 됩니다. 인간도 결국은 결정론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죠. 창조성, 독창성, 이런거는요? 천재적인 작곡가의 음악은요?
저자는 이러한 괴리를 평형상태에 국한해서 동역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고전역학의 문제이고, 평형상태에 관한 고전 역학 방정식들은 시간 t에 관한 항을 -t로 넣어도 해석이 되기 때문에 비가역적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로 부터 나온 현대 물리학은 시간 대칭성 때문에 비가역 현상에 대한 설명을 명확히 할 수 없다는 예를 듭니다. 저 아래 소개한 볼츠만의 기체운동론에서도 이러한 고전역학의 지배를 받는 무수히 많은 기체 입자들을 통계적으로 설명하다 보니 확률적으로 비가역 과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는 좀 '어설픈' 설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실제로 비가역 과정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 비가역이라는 설명을 합니다. 결국 시간은 아인슈타인이나 호킹등이 민스코프스키 공간에서 얘기하는 공간과 함께 세상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전에도 존재했던 한방향으로 흐르는 비 가역적 특성을 가진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한 근거로서 저자는 궤적의 추적에 중심을 두는 고전 역학이 무수히 많은 구성요소들을 설명하려하면 엄청나게 많은 수의 미분방정식이 필요하고 계산이 불가능해 지는 것 뿐만이 아니라 발산할 수 밖에 없음을 보이고, 실제 현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실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도록 위상공간에서의 앙상블로서 전체 시스템의 운동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통계적 해석은 동일한 문제의 고전 역학적 해석과는 반대로 발산하지 않고, 시간 비가역성을 갖게 되고, 결정론 적이지도 않다는 증명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앙상블은 고전역학 항에 추가 항으로 첨가되어 전체 방정식이 비가역적 시간의 흐름을 포함하고 결정론적이지 않은 (카오스 적인) 효과를 갖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전역학, 양자역학, 그리고 우주론에까지 연결시켜가면서 시간 비대칭성에 의한 비가역 과정의 존재와 함께, 그러한 것의 간과로써 나온 양자역학의 주관의 개입같은 비과학적인 것 처럼 보이는 현상에 대한 다른 시각의 시도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압권은 역시 우주론이죠. 전 저자가 이부분 까지 설명해 나갈지는 몰랐었습니다. 현재의 대폭발이론은 어느정도 맞습니다만, 아직도 많은 불완정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그의 비대칭 이론을 통해서 해결 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양자역학의 대립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비선형, 운동에너지, 헤밀토니안, 푸리에변환, 고유치, 고유함수, 위상공간등의 '근본적인 의미'
7
The End of Certainty: Time, Chaos, and the New Laws of Nature

Ilya Prigogine
in collaboration with Isabelle Stengers




New York: The Free Press, 1997
(불어판은 1996년 출판)

한국어판
일리야 프리고진 씀, 이덕환 옮김 사이언스북스.

* 영어본의 경우에는 쪽수 앞에 p자를 붙이거나 앞의 글머리표가 별★임.  







서문: 새로운 합리성?

★ 결정론의 딜레마:
① 상식적으로 어떤 사건은 선행 사건에 의하여 야기되며 그래서 모든 사건은 설명될 수 있고 예측될 수 있다고 보는 한편
② 성숙하고 건전한 인간에게는 행동의 여러 가능성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 (p1)

★ 이 딜레마는 시간의 의미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미래는 주어져있는가 아니면 계속적으로 구축되는 것인가? 근대 과학의 기원을 표시한 것은 갈릴레이의 개념체계에 시간이 편입된 것이었다. (p1)

★ 시간의 화살이라고 불려오던 것의 거부가 이 책이 다루는 주된 문제이다. (p1)

★ 아인쉬타인은 시간은 환상이라고 말했다. (→2)  실로 고전적인 뉴턴의 역학에서부터 상대성과 양자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과거와 현재의 구분을 포함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서술에 관한 한 시간의 화살은 없다는 것은 많은 물리학자들에게 신념의 문제이다.

★ 그러나 모든 곳에서--화학, 지질학, 우주학, 생물학 그리고 인간과학들에서--과거와 미래는 상이한 역할을 한다. 물리학이 시간대칭적이라고 서술하는 것에서 어떻게 시간의 화살이 나오는가? 이것이 이 책의 중심적 관심사들 중 하나인 시간의 역설이다. (p2)

★ 시간역설은 볼츠만이 다윈이 생물학에서 했던 것과 유사한 진화적 접근법을 물리학에서 하려고 했던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드러났다. 뉴턴 물리학의 법칙들은 오랫동안 객관적 지식의 이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 법칙들은 과거와 미래의 등가성을 함축하였으므로 시간의 화살에 근본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이 이상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어 저항을 받았다. 그 법칙들은 궁극적인 것이 되었다. 이 인간정신의 놀라운 성취를 파괴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단일방향 시간(unidirectional time)을 도입할 수 있겠는가?(p2)

★ 볼츠만 이후로 시간의 화살은 현상학의 영역에 귀속되어져 왔다.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하여. (→3) 우리는, 최근의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해서 이것이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카오스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① 비평형 물리학과 ② 불안정체계의 역학의 놀라운 성장이 그것이다.

★ 지난 몇 십 년 동안에 걸쳐서 새로운 과학 즉 비평형과정의 물리학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자기조직화나 무산구조와 같은 개념들을 낳았다. 이 개념들은 오늘날 생태학과 사회과학들뿐만 아니라 우주론, 화학, 생물학을 포함하는 여러 전문분야들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비평형과정의 물리학은 단일 방향 시간의의 효과를 서술하며 비가역성이라는 용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과거에 시간의 화살은 물리학에서 확산이나 점성과 같은 단순한 현상들을 통해서만 나타났는데, 이는 시간 가역적인 동력학의 확대 없이도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우리는 이제 비가역성이 일군의 새로운 현상들--소용돌이의 형성, 화학적 진동(oscillation), 레이저 빛 등--을 낳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두는 시간의 화살의 본질적으로 건설적인 역할을 설명한다. 이제 비가역성은 우리의 지식이 완전해지면 사라지는 단순한 외관적 현상과 동일시될 수 없다. 반대로 비가역성은 일관성(coherence), 즉 수십 억의 입자들을 포함하는 효과를 낳는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평형상태의 물질은 눈먼 상태이고, 시간의 화살을 갖게 되면 비로소 눈을 뜨고 앞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비가역적이고 비평형적인 현상에서 나타나는 일관성이 없다면 지구상에 생명을 그려볼 수조차 없을 것이다. 시간의 화살이 단순히 현상학적이며 주관적이라는 주장은 따라서 말이 안된다. 우리는 실제로 시간의 화살, 진화의 자식들이지 그 선조가 아니다. (p3)

★ 시간의 개념을 혁신하는 데 결정적인 두 번째 발전은 불안정체계의 물리학의 정식화이다. (→4) 고전적 과학은 질서와 안정을 강조하였다. 이제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변동, 불안정, 다수적 선택, 제한된 예측성을 모든 수준의 관찰에서 본다. 카오스와 같은 아이디어는 매우 대중적인 되었으며 과학의 모든 분야들에서 실질적으로 우리의 사유에 영향을 미쳤다. 이제 곧 입증하겠지만, 우리는 고전적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을 불안정과 카오스를 포함하도록 확대할 수 있다. 그런 후에 우리는 우리의 진화하는 우주를 서술하는 데 적합한 자연의 법칙들을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시간의 화살이 포함될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와 미래는 더 이상 대칭적이니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관점--여기에는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이 포함된다--에서 자연 법칙은 <확실성certitude>을 의미하였다. 적당한 초기 조건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도 있고, 과거를 거슬러 알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불안정성이 고려되면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되고, 자연 법칙의 의미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서 <가능성 possibility> 혹은 확률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서양적 사고의 기본적 전통들 중 하나인 확실성에 대한 믿음을 거스르게 된다. Gerd Gigerenzer 외 저 The Empire of Chance의 발언 중에서: "과학은 원인에 관한 것이지 우연에 관한 것이 아니다" (p4)

★ 결정론의 편견을 극복할 "새로운 종류의 지식"에 대한 위대한 물리학자 James Clerk Maxwell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확률은 정신의 상태이지 세계의 상태가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양자역학이 통계학적 개념들을 물리학의 핵심부로 포함한 현재조차도 그렇다. (→p5) 양자역학의 근본적인 대상인 파동함수는 결정론적이고 시간-가역적인 방정식을 충족하는 것이다. 양자 역학의 정통 정식화는 확률과 비가역성을 도입하기 위하여 관찰자를 필요로 한다.

★ 관찰자는 측정을 통하여 시간대칭적인 우주에 비가역성을 도입한다. 아인쉬타인으로 하여금 양자 역학을 인정하지 못하게 한 주된 이유는 이 관찰자의 역할이다.

★ 관찰자는 비가역성의 혹은 시간의 흐름을 양자 이론에 도입하는 데 필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불안정성이 시간 대칭을 깸이 일단 보여지면 관찰자는 더 이상 본질적이지 않게 된다. 시간역설을 풀면서 우리는 또한 양자 역설을 풀며 양자이론의 새로운 리얼리스틱한 정식화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고전적인 결정론적 정통성으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양자이론의 전통적인 법칙들과 연관된 확실성을 넘어서며, 확률의 근본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고전 물리학에서나 양자 물리학에서나 기본적인 법칙들은 이제 가능성을 표현한다. 우리는 이제 자연을 설명하기 위해서 <법칙>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새로움(radical novelty)의 요소를 도입하는 <사건>도 필요하게 된다. 이 새로움이 우리를 맥스웰이 기대한 "새로운 종류의 지식"으로 이끈다. 고전적인 확률이론의 창립자들 중 하나인 Moivre에게는 우연이란 정의될 수도 없고 이해될 수도 없다. 우리는 이제 물리학의 기본적 법칙들에 확률을 포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이것이 이루어지면 뉴턴의 결정론은 무너진다. (→p6) 미래는 더 이상 현재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으며, 과거와 미래의 대칭은 깨진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시간은 대폭발big bang과 함께 시작되었을까? 아니면 시간은 우리 우주보다 앞서서 존재했을까?
  이 질문은 우리를 시간과 공간의 프론티어에 위치시킨다. (...)..우리는 빅뱅이 우리의 우주를 창출한 매질 내의 불안정성과 연관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 우주의 시작은 될 수 있어도, 시간의 시작은 아니다. 우리 우주에는 나이가 있지만 우주를 낳은 매질에는 그런 나이가 있을 수 없다. 시간은 시작이 없으며, 아마 끝도 없을 것이다. (p6)

★ 시간과 결정론의 문제들은 쏘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이후로 서양적 사고의 핵심에 있었다. 결정론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의 창조성과 윤리를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물음은, 민주주의의 이상이 함축하는 개인적 책임 및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동시에 지식과 객관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서양의 휴머니즘적 전통에 있는 심오한 모순을 반영한다. (...) (→p7) 이 작업에서 우리의 목적은 이제 우리가 이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인류는 전환점에 있다. 과학이 확실성과 동일시되지 않고 확률이 무지와 동일시되지 않는 새로운 합리성의 시작점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Yvor Leclerc가 "현세기에 우리는 과학과 철학의 분리로부터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이는 18세기에 뉴턴 물리학의 승리에 뒤이어 일어난 일이다"라고 썼을 때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Jacob Bronowski는 똑간은 생각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인간본성에 대한 이해와 자연 내에서의 인간조건에 대한 이해는 과학의 중심적 주제들 중의 하나이다." (p7)

★ 금세기말에 우리는 종종 과학의 미래가 어떠할까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어떤 이들, 예를 들어 {시간의 역사}의 저자 호킹 같은 사람에게는 우리가 종말에 즉 "신의 정신"을 읽을 수 있는 순간에 가까이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와 달리 우리가 실제로는 새로운 과학이 시작되는 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이상화되고 단순화된 상황에 더 이상 국한되지 않고 실제 세계의 복잡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과학, 인간과 인간의 창조성을 자연의 모든 수준에서 존재하는 근본적인 경향의 일부로 보는 과학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p7)

제1장 에피쿠로스의 딜레마

▶ 에피쿠로스는 <클리나멘clinamen>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이런 딜레마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루크레티우스의 말에 의하면 <진공 중에서 물체들이 자체의 무게 때문에 밑으로 직선으로 떨어지다가, 불확실한 시간에 불확실한 장소에서부터 길을 조금 벗어나게 되고, 그 벗어나는 정도는 너무나도 작아서 그저 방향이 조금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클리나멘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었다. (20-1)

▶ 희랍철학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했다. 플라톤은 진리를 <있음being>, 즉 <됨being>을 넘어선 불변의 존재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이런 생각이  생명과 사상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패러독스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플라톤은 {소피스트}에서 우리에게 있음과 됨이 모두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그후 서양 사상은 끊임없이 이런 이원론으로 오염되어 왔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왈은 서양 사사의 전반적인 역사는 자동기계장치automaton이라는 세계관과 신이 우주를 지배한다는 신학 사이를 끊임없이 우왕좌왕하는 불행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런 세계관과 신학은 모두 결정론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이다. (21)

▶ 뉴턴 법칙의 결정론적이고 시간 가역(可逆)적인 특성. 초기 조건이 주어지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과거를 계산할 수 있다. (21-22)

▶ 20세기 들어 뉴턴 법칙이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으로 대체되었으나  위의 두 특성은 남아 있었다. 양자 역학의 기본 방정식인 슈뢰딩거 방정식은 결정론적이고 시간 가역적이다. 따라서 자연 법칙은 아직도 확실성을 뜻하고 있다. (22)

▶ 수동적인 자연관은 서양 사상의 특징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자연이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22)

▶ 아인쉬타인과 같은 물리학자들에게는 시간의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철학자들에게는 이것이 여전히 인간의 실존이 갖는 의미의 바탕에, 존재론의 중심 문제로 남아있다. (p24)

▶ 앙리 베르그송은 [가능성과 실존 The possible and the real]이라는 짧은 글에서 <시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시간은 모든 것이 한번에 주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간은 창조성과 선택을 실어 나르는 자동차가 아닐까? 시간의 실존이 자연에서의 비결정론의 실존의 증거가 아닐까>라고 했다. (...) 결정론은 잘 정의된 메커니즘에 해당하고 뉴턴, 슈뢰딩거, 아인쉬타인이 정립한 자연법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수학화>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결정론으로부터 벗어나기만 하면 <가능성>이나 <우연>과 같은 의인화된 개념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24)

▶ 물리학의 시간가역적인 견해와 철학의 시간 중심적인 견해의 갈등은 공개적인 충돌을 낳았다. 만일 과학이 인간 경험의 기본적인 측면들 중 일부를 통합할 수 없다면 과학의 목적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 말인가? 하이데거의 반(反)과학적 태도는 잘 알려져 있다. 이미 니체도 사실은 없으며 해석만이 있을 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썰(John R. Searle)이 말한 바처럼 해체에 집중하는 탈근대적 철학은 자연, 객관성, 현실의 성격에 관하여 서양 전통에 도전한다. (p15) 덧붙이자면, 진화의 역할은, 사건의 역할은 우리가 자연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물리학의 시간 가역적인 견해를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 "한편으로, 쉬뢰딩거의 방정식이 있는데, 이는 어떤 체계의 파동함수가 어떻게 시간에 따라 변하는지를 완전히 결정론적인 방식으로 서술한다."(Steven Weinberg)

▶ 이 책에서 호킹은 우주론에 대해 순수한 기하학적 해석을 주장했다. 간단히 말해서 시간은 공간에서의 <우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킹은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능을 가진 생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화살이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우주론자들과 마찬가지로 호킹도 소위 <인류학적 원칙>을 도입했다. 그는 <인류학적 원칙>이 정지된 기하학적 우주에서 어떻게 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25-6)

▶ 로저 펜로즈는 {황제의 새로운 지성}에서 <우리가 '지성'을 물리적 혹은 논리적 용어로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물리의 기본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펜로즈가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물리의 기본 법칙을 새로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26)

▶ 마찰이 없는 진자 운동과 같은 시간 가역 과정에서는 미래와 과거가 똑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미래를 나타내는 +t를 과거를 나타내는 -t로 바꾸어도 된다. 그렇지만 비가역과정에서는 시간이 방향성을 갖는다. 방사성 물질은 과거에 만들어졌고, 미래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약체의 흐름은 점성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느려지게 된다. (...) 자연에서는 시간 가역적인 과정도 있지만, 시간 비가역적인 과정도 있다. 그러나 비가역적인 과정이 일반적이고, 가역적인 과정은 예외라는 것이 더 타당하다. 진자가 가역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마찰을 무시해야만 하는 것처럼 가역 과정은 이상화된 경우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자연에 절대적인 진공이 없는 것처럼 이런 이상화는 근사적으로만 가능하다. (...) 그렇지만 비가역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간 대칭성이 파괴된 이론이 필요하다. (27-8)영어본 18면

▶ 열역학 제2법칙: 비가역과정은 엔트로피를 생성시킨다. (엔트로피는 희랍어로 '진화를 뜻한다.) (28)

▶ 다윈은 생명이 끊임없는 진화의 결과임을 밝혔고, 됨을 자연의 이해에 필요한 핵심적인 개념으로 격상시켰다. (29)

▶ 엔트로피의 증가는 입자들 사이의 수많은 충돌에서 발생하는 전체적인 <경향>이다--볼츠만 (30)

▶ 볼츠만과 다윈은 모두 <개체>의 연구를 <집단>의 연구로 대체시켰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일어나는 (개체에서 일어나는 변이나 미시적인 충돌과 같은) <소규모> 변화가 집단적인 수준에서 진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밝혔다.





▶ 지속적 상호작용이 있는 경우에는 계를 <분해>해서 각 부분을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없고, 계 전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거시물리에서 비가역성과 확률이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다. (52-3)

▶ 아인쉬타인이 증명했던 것처럼, 중력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벗어나서 리만 기하학을 도입해야만 했다.



▶ 가지치기--bifurcation

▶ 시간의 화살을 확립하게 되면 자연의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인 통일성과 다양성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의 화살이 우주의 모든 부분에 공통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통일성이 나타난다. 당신의 미래가 바로 나의 미래에 해당하고, 태양의 미래는 다른 별들의 미래가 된다. 다양성은 바로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방안에 들어 있는 어느정도 열적 평형에 가까이 있고, 분자 수준의 무질서 상태에 있는 기체의 혼합물인 공기에서 찾을 수 있다. 방안에는 나의 집사람이 마련해 준 아름다운 꽃꽂이도 있다. 꽃꽂이는 시간에 따른, 비가역적인, 비평형과정의 덕분으로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도로 조직화된 대상이다. 이 같은 시간의 긍정적인 역할을 고려하지 못하는 자연 법칙은 절대로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 시간의 공간화가, 우리 주변에서 관찰되는 진화하는 우주는 물론 우리 자신의 경험과도 양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내가 처음이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은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에게 <시간은 창조물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1장에서 1930년 노벨상 수상에 맞추어서 발간된 그의 후반기 논문 {가능성과 실존}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 논문에서 그는 우리 인간의 존재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움의 연속적인 창조>와 관련이 있다는 그의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시간은 자연에 비결정론적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가능성>은 <실존>보다 훨씬 풍요롭고, 우리 주변의 우주는 가능한 세상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거시적인 비가역성은 미시적인 수준에서의 <무작위성>의 표현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런 무작위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 평형 부근에서의 자연 법칙은 보편적이지만,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의 자연 법칙은 메커니즘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주위에서 관찰되는 자연의 다양성의 원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평형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면 물질은 요동과 불안정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새로운 특성을 얻게 된다. 물질이 더욱 <능동적>이 된다. (75-6)

▶ 가지치기 점을 넘어서면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진동하는 화학 반응이 있을 수 있고, 비평형 공간 구조, 즉 화학 파동chemical wave이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시간-공간적 조직화를 <무산구조>라고 불렀다. (...)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형태의 조건이 있다.

  (1) 무산 구조는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생기며, 무산 구조가 나타나기 위한 평형으로부터의 특징적인 거리가 있다.
  (2) 무산구조의 생성에는 X에서 중간 물질 Y가 생기는 동시에 Y에서 X가 생성되는 것과 같은 촉매 단계가 포함된다.  (76)

▶ 프로이트는 과학의 역사가 소외의 역사라고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행성계의 중심이 아님을 밝혔고, 다윈은 우리 인간이 다른 무엇도 아니고 동물 중의 하나임을 밝혔고, 프로이트는 우리의 합리적 행동이 무의식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밝혔다. 이제 우리는 이런 전통을 뒤집을 수 있게 되었다. 창조성이나 혁신과 연관된 인간의 활동이 물리나 화학의 수준에서부터 존재하는 자연 법칙이 증폭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81-2)

▶ <중앙집중적 관리로는 자연의 조직이 유지되지 않으며 될 수도 없다. 오로지 자생적 조직화로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 자생적 조직화가 일어나는 계는 우세한 환경에 순응할 수 있다. 즉 그런 계는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 열역학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외부 조건의 변화에 대해서 극도로 탄력적이면서도 견고하게 된다. (...)>(82)

▶ 내가 젊었을 때의 꿈은 시간의 핵심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과학과 철학의 통합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평형 물리에서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83)

▶통계적 이론은 궤적의 동력학이 아니라 <상관성의 동력학>이다.

▶ 안정한 계의 경우에는 궤적을 이용하거나 앙상블을 이용하는 이론이 똑같은 결과가 된다. 그러나 불안정한 동력학계의 경우에는 (궤적이나 파동 함수에 해당하는) <개체적> 입장과 (앙상블에 해당하는) 통계적 입장의 동등성이 무너진다. (97)

▶ 여기서도 운동 방정식은 결정론적이다. 즉 의 값을 알면 의 값이 결정된다. 이것이 바로 <결정론적> 카오스의 예가 된다. (97)

▶ 카오스의 문제는 개체적 궤적의 수준에서는 해결할 수 없지만 앙상블의 수준에서는 해결이 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 <카오스의 법칙>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 시간의 화살을 가진 상관성의 흐름은 확률분포에 대한 새로운 해에 속하지만, 궤적의 수준에서는 시간의 화살을 가진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101)

Chapter 8  
Does Time Precede Existence?

▶ "Time precedes existence"
빅 뱅 이전에도 시간은 존재하였다. (p163)

▶ 포앵카레 공명은 과거와 미래가 동일한 역할을 하는 동력학 집단을 파괴한다. 이로써 시간대칭성을 깨는 소집단(semigroup)이 생겨난다. (p171)

▶ 상대성이 시간의 공간화를 함축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민코프스키가 말했듯이 (→p172) 시간과 공간은 더 이상 독립적인 실체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의 화살의 존재를 미리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 우주의 탄생은 약 150억년 전에 일어났다. 이것은 지구가 150번 회전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는 수소의 원자에서의 전자의 회전수--초당 10조번--에 비해 볼 때 큰 수가 아니다. (p173)

▶ 우주의 탄생을 공짜 점심으로 보는 Edward Tryon의 이론. 타이런의 견해에서 우주는 두 가지 형태의 에너지를 갖는다. 하나는 중력과 연관된 것이고 (이는 음수negative이다) 다른 하나는 아인쉬타인의 유명한 공식----에 따르는 질량과 연관된 에너지이다(이는 양수positive이다).  에너지 총량을 0으로 보고 한쪽에서는 음수의 에너지가 다른 쪽에서는 양수의 에너지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이 이론이다. (p175)

▶ 아마도 아인쉬타인의 가장 심오한 기여는 중력을 시-공간(space-time)의 곡률(curvature)과 연관시키는 것이리라. (p175)

▶ 뉴턴의 견해에서는 시-공간은 한번 주어지면 변함이 없다. 그것이 담고 있는 물질과는 독립적인 것이다. 이제 아인쉬타인의 혁명 덕분에 우리는 시-공간과 물질의 연관은 아인쉬타인의 기본적인 장 방정식(field equations)에 의하여 표현된다는 것을 안다.
  물질적 내용이 바로 시-공간의 곡률의 원천이다.
  스피노자가 아인쉬타인이 가장 좋아하던 철학자였다. 우리는 그의 정신을 모델의 선택에서 인식할 수 있다. (p176)

▶ 플랑크 스케일
플랑크 상수 h, 중력상수 G, 빛의 속도 c를 이용하여 길이, 시간, 에너지를 측정한다.
예를 들어 길이 l = (Gh/c3) ∼ 10-33cm이다. (p177)

▶ 근대 물리학의 경계는 중력 혹은 시공간의 양자화(quantization)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는 것이다. (p178)

▶ 등각시간(conformal time) (p178)

▶ 등각인자에 의하여 기술되는 중력장은 음의 에너지의 저장고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로부터 물질을 만드는 에너지가 추출된다.
  이것이 "공짜 점심"모델의 이론적 기반이다. 여기서 총에너지(중력장 더하기 물질)는 보존되는 반면 중력 에너지는 물질로 전환된다. (p179)

▶ 우리의 우주의 탄생은 더 이상 특이성과 연관되지 않고 위상전이나 분기와 유사한 불안정성과 연관된다. (p179)

▶ 엔트로피는 무엇보다도 물질과 연관되기 때문에 시-공간의 물질로의 전환은 엔트로피를 낳는 무산적이고 비가역적인 과정에 상응한다. 물질을 시-공간으로 바꾸는 반대방향의 과정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우주의 탄생은 이렇듯 엔트로피의 과열의 결과인 것이다. (p180)

▶ 이 책에서 강조되는 두 개념: 비가역성, 확률 (p181)


우리의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도 시간의 화살은 있었다. 그리고 이 화살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지금껏 단순화된 모델만을 사용하였다. 모든 상호작용들을 포함할 통일 이론에 대한 아인쉬타인의 꿈은 오늘날에도 살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론은 그 탄생 및 진화와 연관된 우주의 시간정향적(time-oriented) 성격을 고려에 넣어야만 한다. 이는 어떤 장들(예를 들면 중력)은 다른 장들(예컨대 물질)과 상이한 역할을 할 경우에만 성취될 수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통일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더 변증법적인 자연관을 필요로 한다.
  시간의 기원에 관한 물음들은 항상 우리에게서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시작이 없다는 생각--시간은 우리의 우주의 존재에 선행한다는 생각--은 더욱 더 그럴 듯한 것이 되고 있다. (182)


Chapter 9
A Narrow Path

▶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확실성의 종언에 도달하였다. 이것은 인간 정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그 반대가 맞음을 것을 믿는다. (183)

▶ 오늘날 우리는 단순한 동력학적 체계를 따로 떼어 고전 역학과 양자역학의 법칙들을 입증할 수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평형으로부터 거리가 멀며 모든 수준에서 변동과 불안정과 진화의 패턴들을 발견하는 거대한 열역학적 체계인 우주 내에서 안정된 동력학적 체계들에 적용되는 이상화(관념화)에 상응한다. 다른 한편, 확실성은 오랫동안 시간과 창조성의 부정과 연관되어져왔다. 이 수수께끼를 그 역사적 맥락 속에서 고찰하는 것이 흥미로울 것이다. (p184)

▶ 확실성에 대한 데까르트의 추구는 뉴턴의 작업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이는 3세기 동안 물리학의 모델이 되었다. (p185)


  인간조건에 대한 아인쉬타인의 견해는 몹시 비관적이었다. 그는 파시즘과 반유태주의의 발생에서 두 세계 대전들까지 걸쳐있는, 인간역사에서 특히 비극적인 시기를 살았다. 그의 물리학관은, 불확실하고 주관적인 영역으로부터 객관적인 지식을 떼어낸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성이 격렬한 세계에 대하여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에 의해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아인쉬타인이 생각한 과학--인간 존재의 변덕으로부터의 탈출--이 여전히 오늘날의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오염된 도심지나 도시를 떠나서 높은 산으로 달아날 수 없다. 우리는 미래의 사회를 짓는 데 참여해야 한다. 피터 스코트의 말을 빌자면, "세계는, 우리의 세계는 끊임없이 알 수 있는 것과 가치 있는 것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하며, 사물의 주어진 상태를 넘어서고자 하고, 새롭고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고자 한다." (p185)


우리 시대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새로운 유형의 통일성을 찾는 시대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정합성을 정의하는 데서 과학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p186)

▶ 8장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아인쉬타인은 과거와 미래의 동등 가능성이라는 생각을 거부하였다. (즉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시간 비가역적이다.) 아인쉬타인에게는 시간을 거슬러 간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실제 세계의 부정이었다. 그는 그 자신의 견해를 괴델이 급진적으로 해석한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p186)

  참고: 1949년에 아인쉬타인은 논문집을 봉정받았는데, 여기에는 대 수학자인 쿠르트 괴델의 기고 논문도 있었다. 괴델은 비가역성으로서의 시간이란 환상일 뿐이라는 아인쉬타인의 진술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는 아인쉬타인에게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한 모델을 제시하였다. 아인쉬타인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괴델에게 보내는 답장에서 그는 "내 과거로 전보를 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고 썼다. 그는 심지어는 이 불가능성이 물리학자들로 하여금 비가역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8장 p165의 내용

▶ 아인쉬타인은 그 어떤 물리학자에게서보다 도스또예프스끼에게서 더 많이 배웠다고 되풀이하여 말하곤 했다. (p187)


  우리는 우연을 우리의 문제들에 대한 유일한 해답으로서 인정하지 않은 아인쉬타인을 분명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좇는 길은 둘 다 소외로 이끄는 두 세계관 즉 세계를 결정론적 법칙들에 의하여 지배되어 새로움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으로 보는 관점과 (→ p188) 주사위놀이를 하는 신에 의하여 지배되어 모든 것이 비합리적이고 무(無)인과관계적이며 이해 불가능한 것으로 보는 관점 사이에 난 좁은 길이다.
  우리는 이 책이 이 좁은 길을 가는 하나의 여행이 되도록 그리하여 과학에서 인간의 창조성의 역할을 설명하도록 시도하였다. 참 이상하게도, 이 창조성은 그 가치가 종종 낮게 평가된다. 우리는 모두 셰익스피어, 베토벤 혹은 고흐가 태어나자마자 곧 죽었다면 다른 누구도 그들이 성취한 것을 성취하지 못 했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는 과학자들에게도 맞는 것이 아닌가? 뉴턴이 없었다면 다른 누가 고전적인 운동법칙들을 발견하지 않았을 것인가? 열역학 제2법칙은 클로시어스에게만 전적으로 달려있었던가? 예술적 창조성과 과학적 창조성이 대조적이라는 데에는 어느 만큼의 진실이 있다. 과학은 집단적인 기획이다. 과학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받아들여지려면 엄밀한 기준과 요구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속들이 창조성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발하는 것이다.
  시간 역설의 정식화 자체가 인간의 창조성과 상상력의 비범한 업적이다. 만일 과학이 경험적 사실들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시간의 화살을 부정할 것을 어떻게 꿈꿀 수 있었겠는가? 시간 대칭적인 법칙들의 공들인 완성은 단지 자의적인 단순화들을 도입함으로써 성취된 것이 아니다. 경험적 관찰들을 이론적 구조들의 창조와 결합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시간 역설의 해결은 상식에 호소함으로써 혹은 역학의 법칙들의 임시변통적 수정에 호소해서는 달성될 수 없었다. 단지 이론구조의 약점을 밝혀내기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근본적인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정론적 카오스라든가 아니면 포엥카레 공명과 같은 새로운 물리학적 개념들이 필요했으며, 이러한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학적 도구들이 필요하였다. (→ P189) 우리는 자연과 대화를 하면서 처음에는 장애물로 나타난 것을 인식자와 인식대상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신선한 통찰을 제공하는 특유의 개념들로 바꾸었던 것이다.
  현재 출현하고 있는 것은 결정론적 세계와 순수한 우연만 있는 자의적인 세계라는 두 소외적 이미지들 사이의 어딘가에 놓여있는 "중간적" 기술(記述)이다. 물리 법칙은 환원 불가능한 확률적 재현에 의하여 표현되는 새로운 형태의 이해 가능성을 낳는다. 자연의 새로운 법칙들은 미시적 수준에서든 거시적 수준에서든 불안정성과 연관될 때 사건들의 가능성을 다루게 된다. 그러나 이 사건들을 공제 가능하고 예상 가능한 결과들로 환원하지는 않는다. 예상되고 통제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사이의 이러한 경계구획은 이해 가능성에 대한 아인쉬타인의 추구를 충족시킬 만하다.
  맹목적 법칙들과 자의적 사건들 사이의 극적인 양자택일을 피하는 이 좁은 길을 따라서 갈 때 우리는 우리 주위의 구체적 세계의 대부분이 지금까지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표현을 빌자면, "과학의 그물의 눈들 사이로 빠져나갔음"을 발견된다. 우리의 과학의 역사의 이 특권적 순간에 새로운 지평을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신념을 우리의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p189)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대한 생각도 털어놓았다.

▶시대정신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건 없지만, 좀 더 없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 남북이 통일돼 유라시아대륙을 평화공동체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 그래야 50년, 100년 후의 대한민국도 존재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런 기반을 현 정부가 닦아야 해.미래를 향한 새로운 정치를 설계하고 사회통합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이 더 나아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전 솔직히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지금 저에게 가장 큰 화두인지도 모르죠. 전에는 시대에 대한 예측과 해석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 얼마전부터는 해석도 잘 안 되고 예측은 엄두도 못 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앞에 문제가 던져졌고 그걸 해결해야 할 대단원이 다가온다는 겁니다.


 

미디어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볼펜과 수첩을 갖고 밥을 먹었던 나의 직업적 경험에 비춰볼 때 지금의 변화는 따라가기도 만만찮고 감당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기술의 발전이 분명 편리하고 일을 빨리 진행시키는 이점을 주지만 또한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적응의 근본 문제를 던지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최근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는 현상이 디지털북 또는 ‘e북’이다. 얼마 전 강남의 한 대형 서점의 ‘e북’코너를 보면서 또 다른 변화가 몰려온다는 것을 느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몇 년 전에 ‘킨들’이라는 ‘e북’ 단말기를 내놓아 인기를 끈 이래 세계 출판계는 ‘e북’ 전략을 고민한다. 미국 최대 오프라인 서점 반스앤노블도 투자를 시작한지 오래다. 삼성전자도 이 분야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간주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사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인터넷의 등장은 이미 종이 없는(paperless) 세상을 예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책이라고 예외가 있을까. 인쇄 미디어는 이미 ‘종이 없는’ 터널에서 헤매고 있다. 종이 신문의 매력의 감소보다는 광고 마케팅에서 종이신문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비싼 생산원가를 감당하기가 벅차다. 

 

이제 인터넷의 쓰나미가 책으로 넘어온 셈이다. 책장을 넘길 때 손에 닿는 종이의 감촉, 책을 읽으며 밑줄 치는 즐거움, 서가 가득이 채워진 책을 보는 어줍지 않은 만족감 같은 것이 아날로그 세대가 치워버리기 힘든 익숙함이다. 

 

지금은 ‘e북’단말기 경쟁이 치열하고, 기술은 발전하기 마련이다. 이미 e북을 읽으며 밑줄도 칠 수 있고 모니터는 더욱 책과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종이 책에 비해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J.K. 롤링스는 해리포터를 e북으로 만드는 것을 거부했다지만 그럴 용기를 가진 작가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미 미국의 대학에서는 e북을 교재로 쓰는 곳도 나왔을 정도다. 대학에서 중고교로 그리고 초등학교로 e북 교재가 확대되는 날은 얼마나 남았을까.

 

궁극적으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세계 인구는 늘어나고 그들이 지식정보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면서 종이 수요는 감당할 수 없이 증가할 것이다. 중국이 현재 미국의 소득수준과 비슷해지는 2030년, 중국 혼자만의 종이 수요도 지금의 세계 종이 소비량을 상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필요한 나무를 지구가 감당할 수 없으니 e북의 효용성이 여기에도 있다.

 

어쨌든 e북의 확산은 궁극적으로 지식의 보관 창고인 도서관의 모습도 변화시킬 것이다. 그 시스템과 이용 방법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기존의 도서관 모습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이집트 문명이 파피루스를 만들어내고, 중국에서 채륜이 종이를 개발한 이래 2천년 동안 익숙해진 종이 위의 문화가 그 분기점을 맞고 있다

연구진은 절대 0도(영하 273도)에 가까운 총연장 27㎞의 원형 궤도 터널 내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각각 3.5TeV 에너지의 양성자 빔을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쏴 충돌시키고 데이터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소의 올리버 부흐뮐러 연구원은 “우리는 이전에 아무도 가보지 않은 영역에 발을 디뎠으며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말했다.

대형 강입자가속기는 빅뱅의 비밀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1994년 착공해 95억달러를 투입해 2008년 완공됐지만 이내 두차례 고장으로 멈춰선 뒤 수리와 개선에만 모두 4000만달러가 들었다.

이날 실험 데이터가 기록되면서 과학계는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 입자(Higgs Boson)의 존재가 확인될지 주목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는 자신의 이름을 따 이 입자가 모든 물질에 질량을 부여했다는 가설을 세웠다. 즉 빅뱅 당시의 기체 잔해가 은하, 항성, 행성 등을 구성했다는 것이다. 또 이번 실험은 각각 우주의 25%와 70%를 차지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규명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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