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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연구

리더는 미래를 예견하는 직관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IT도 비슷합니다. IT 변화도 패션처럼 빠르고 민감하죠. 그러니깐 IT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사실 잘 모르는 겁니다. 미래를 잘 예견하는 직관력이야말로 일반 사람과 리더를 구분하는 차이죠.

일찍이 닌텐도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미래를 남들보다 먼저 아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일찍 눈치  채고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그나마 우리 시대에 뛰어난 직관력을 가진 리더도 결국 변화를 읽어 낼 뿐이지 미래 그 자체를 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아무나 미래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게 일반 사람에게 순순히 받아들여지겠습니까? 결국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IT 업계에서 영향력을 갖춘 사람이 한마디 해야 따라가죠. 그래서 그들은 비저너리(Visionary)로 추앙받기도 하는 것이죠.

IT 회사가 비저너리를 가지고 있다는 건 매우 유리합니다. 비저너리가 한마디 하면 언론에서 화제가 되고 그 말을 믿고서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IT 업계는 변화가 큰데 비저너리를 갖춘 회사는 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죠.

최근 부활한 손정의를 보면 그런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같은 비저너리로 거듭나는 것 같습니다. 손정의는 과거 인터넷 황무지였던 일본에 야후를 설립하면서 정부 관리에게 인터넷에 많은 투자를 하도록 부탁했죠.

이때 손정의가 했던 말이 ‘영국은 배로 바닷길을 열어서 세계 최강국이 되었고 미국은 차로 도로를 만들어서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면서 다음 세대는 인터넷 길을 장악한 곳이 세계 최강국이 된다’ 였습니다. 또한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하면서 ‘인터넷망은 곧 사회의 중요한 인프라’라며 많은 돈을 투자했습니다.

손정의가 하는 이야기는 결국 손안의 컴퓨터가 그리는 미래입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11일 손정의는 앞으로 와이파이에 거액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공중 무선 LAN이 4,000여개 소에 있지만 이를 수만개로 확대할 예정이랍니다.

앞으로 와이파이를 통해서 신문과 잡지를 서비스하고 영화 전편을 무료로 전달하는 휴대폰 시사회 등 동영상 전달 서비스를 강화할 예정이랍니다.

그는 앞으로 생활 속에서 80%는 와이파이로 연결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밝히며 3G 통신망과 와이파이에 대해서 매우 재미난 비유를 했습니다. 인간은 코와 입으로 호흡하듯이 3G와 와이파이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와이파이가 없으면 가슴이 답답한 시대가 온다네요.

저는 손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비저너리 모습 말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가장 볼 수 없는 게 바로 그런 비저너리 아니겠습니까?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야 많지만 미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이끄는 비저너리 리더를 찾기가 어렵네요.

아무래도 아직 선진화(?)를 추구하는 국가답게 선진화된 기업 따라가기 바빠서 그런가요? 아직 까지 한국에서는 변화를 주도하는 회사와 리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손정의는 기술을 통해서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그런 철학을 가지고 있거든요.

빌 게이츠는 업무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었고 스티브 잡스는 생활 편리함을 추구합니다. 손정의는 상생을 중요시하는데요. 그가 초고속 인터넷 사업과 모바일에 뛰어든 것도 따지고 보면 수도와 전기처럼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거죠. 그리고 그가 와이파이에 거액을 투자하는 것 역시 사업적인 판단이 들어간 것이지만 일본 사회 인프라 구축에 대한 그의 사명감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도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손정의처럼 미래를 이야기하고 변화를 주도하고 또 사회를 걱정하는 그런 기업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걸 보니 손정의 행보를 보면 앞으로 KT나 LG텔레콤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보이네요. 소프트 뱅크 모바일은 도코모에 한참 뒤떨어진 기업이었지만 손안의 컴퓨터라는 비전을 제시해 이동통신 패러다임을 바꾸고 변화된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요.

결국 KT나 LG텔레콤이 SK텔레콤과 똑같이 나가봐야 항상 2등, 3등 합니다. 1등 하려면 SK텔레콤이 못 하는 것을 해야 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손정의를 살려준 아이폰이 KT를 구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너무 많은 시간을 허공 속에서 보내버렸네요.

언젠가는 출시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죠. 빌 게이츠가 항상 사업은 너무 느려서도 안 되고 빨라서도 안 된다면서 타이밍을 중요시했

손자병법에서 경영전략 얻은 손정의
아이폰 덕분에 완전 대박난 손정의

죠. 또 그는 빨라서 실패하면 칭찬하지만 늦어서 실패하면 봐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늦깎이로 대학원에 들어와 공부하고 있으니 나의 진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미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 한국으로 돌아올 거냐?”다.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는 ‘나이 따지는 한국 직장 풍토에서 취직이나 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로 들렸다. 내 ‘계획’대로 박사과정을 마친다고 해도, 그때 나는 40대 초반이다. 기업의 정년이 점점 앞당겨지는 추세인데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 40대 초반은 그야말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다. 이때 무엇을 새로 시작하는 게 무리니까, 나이 별로 안 따지는 외국에서 직장을 잡는 방안도 생각해보라는 얘기쯤으로 알아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한 친구가 내게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한 뒤부터다.

“성원아, 한국에선 평균 3만원이면 내 미래가 어떤지 훤히 알 수 있다. 점집 세 군데만 훑으면 알 건 다 안다. 이런 데서 미래학을 몇 년씩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점쟁이의 말은 심리적인 효과가 있어서, 맞고 틀리고 상관없이 머릿속에 각인된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기면, 점쟁이의 알쏭달쏭한 ‘경고’가 떠오른다. 그래서 다시 점쟁이를 찾는다. 살고 있는 현실이 답답해 점쟁이를 찾기도 하지만 진짜 미래를 보기 위해서도 찾는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더러 미래를 맞춘 점쟁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친구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점쟁이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겠느냐? ’는 것이다. 이길 수 없다.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

미래 예측하다 말먹이에 묻힌다?

그렇다면 미래학이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니다. 미래학계에서도 미래를 정확히 내다본 사람은 영웅이 된다.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Peter Shwartz)가 대표적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고, 세계 미래학자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그가 쓴 ‘미래를 읽는 기술’은 미래학의 필독서로 꼽힌다. 시나리오 기법의 진수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빛내는 건 소련의 붕괴를 예측했다는 꼬리표다. 이는 미래학자라면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막중한’ 운명 앞에서 데이터 교수는 “미래를 예측하려는 자, 모두 ‘말 사료’에 묻힐지어다! ”라고 너스레를 떤다. 말 사료? 말먹이? 사연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111년 전인 1898년 미국 뉴욕, 세계 각지에서 도시설계자(Urban Plann-er)들이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세계 최초의 모임이었던 만큼 도시계획이나 경제개발 등에 주제가 집중돼야 했으나 이들이 논의한 주제는 엉뚱하게도 말(horse)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 ‘런던타임스’ 기사를 들고 왔고, 기사 내용은 50년 뒤 세계는 증가한 인구 때문에 말도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기사는 1950년 세계의 모든 도시가 약 2m80cm(9피트) 높이의 말먹이로 덮인다고 예측했고, 1950년의 뉴욕은 600만 마리의 말이 필요했다. 이대로라면 뉴욕은 말 사료에 덮여 사람이 살 수 없는 끔찍한 폐허로 변하거나, 말 없는 우울한 도시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결론이 이렇게 흘러가자 국제회의장의 도시설계자들은 서둘러 회의장을 빠져나갔고, 열흘 동안 진행할 예정이던 회의는 사흘 만에 어정쩡하게 막을 내렸다.(출처: futuryst. com).

인간은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일까. 예측이 이처럼 엉뚱한 결론으로 흐른 사례는 숱하다. 그렇다고 예측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말먹이 사건의 핵심은 현재를 떠나서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을 지우고 다른 장면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19세기 말의 뉴욕은 문만 열고 나가면 말, 마차, 마구간, 말똥, 건초더미 등이 보였을 것이다. 이 장면을 싹 지운 채, 말과 다른 운송수단을 그릴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신지식에 ‘최초의 자동차’를 물어보았더니 1886년 독일의 다임러와 벤츠가 최초로 휘발유 자동차를 발명하고, 뒤이어 1895년 프랑스의 미쉐린이 자동차용 공기타이어를 발명했다고 한다. 1898년 뉴욕에 모인 도시계획가들 중 몇 명이나 이 사실을 알았을까? 당시 ‘꿈의 신기술’이었던 자동차를 자신의 일상으로 끌어들여 마음대로 타고 다니는 장면을 상상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자동차 덕분에 아스팔트 도로가 깔리고,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그래서 병원이 필요하고, 병원이 요구하는 신약이 개발되고, 차를 훔치는 도둑이 나타나고, 이들을 잡기 위해 경찰이 동원되고, 도둑을 집어넣을 감옥이 생기고, 덕분에 거대 도시가 출현하는 일련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예측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1886년에 이미 휘발유 자동차가 발명됐으나 이를 알지 못한 이들은 1950년에 세계가 말먹이로 뒤덮일 것이라 예측했다.

과거 삼성전자의 신기술 개발을 지휘한 분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기술의 동향은 예측할 수 있지만,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가 진정 알고 싶었던 것은 기술이 바꿔놓을 미래의 우리 모습이었다.

지혜를 모으는 조직적 활동

기술과 사회의 변화, 이 관계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도 우리는 매일, 100년 전 뉴욕에 모였던 사람들이 허둥지둥했던 것처럼 아찔한 현재를 살고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지난 2월3일자 ‘뉴욕타임스’ 과학 면에 실린 기사를 가져왔다고 가정해보자. ‘원격이동기술 한걸음 도약(A Leap for Teleporting, Between Ions Feet Apart)’이란 제목의 이 기사는 미국 메릴랜드대와 미시간대 연구진이 떨어져 있는 두 원자 사이에서 순간적으로(빛보다 빠른 속도로) 양자정보를 이동시켰다고 보도했다. 한 원자의 양자 상태(정보)를 즉각적으로 다른 원자로 옮겼다는 얘기다.

물리학계에선 ‘양자의 얽힘 현상(en- tanglement)’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두 원자가 떨어진 거리에 관계없이 서로 얽혀 있다, 혹은 연결돼 있다는 얘기다. 거리에 관계없이 연결돼 있으니, 정보의 이동은 빛보다 빠르다는 얘기도 된다. 이 때문에 빛을 가장 빠른 것으로 간주했던 아인슈타인은 양자의 얽힘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한 바 있다.(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제공하는 글로벌동향브리핑을 읽어보길 권한다. 위 실험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선 현재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실험내용을 번역해 올려놓고 있어 미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미래학자이자 공상과학소설의 대가인 아서 클라크는 순간원격이동이 인류가 오랫동안 상상했던 기술이라고 했다. 하지만 금세기 내 실현될 수 있을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이 거짓말 같은 아이디어가 1997년 빈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안톤 젤링거(Anton Zelinger) 교수의 ‘양자 전송’ 실험으로 구체화되더니, 많은 연구가 줄을 잇고 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조만간 공상과학영화 ‘스타트랙’에서 나오는 미래의 인류처럼 순간 사라졌다가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떠든다. 그러나 이는 기술의 겉모습만 보고 하는 얘기다. 이 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찬찬히 뜯어봐야 사회의 변화를 가늠해볼 수 있다.

우선, “원조(元祖)를 찾아 대화해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한다”는 데이터 교수의 미래 법칙을 적용해보자. 이를 위해 얼마 전, 온라인 매거진(signandsight.com)에서 젤링거 교수를 인터뷰한 내용을 참조하자. 양자역학으로 세상을 보며 결정론적 사고를 싫어하는 젤링거 교수는 양자 전송으로 보내는 것은 물질의 특성(properties)이지 물질(matters) 그 자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원본임을 증명하는 건, 물질(atoms)의 질서(order)를 뜻하는 특성이지 물질 그 자체는 아니다”고 주장한다.

젤링거 교수의 주장은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리송하게 한다. 원격이동의 핵심은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정보의 이동인데, 그렇다면 이동하기 전의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 몸은 어떤 상태로 남는 것일까? 나를 증명하는 정보를 빛보다 빠르게 전송할 수 있다면 그 정보는 무게가 없는 것일까? 그 정보는 이른바 영혼(혹은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자면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뇌 과학자, 컴퓨터 공학자, 인지공학 전문가, 기공(氣功)학자, 사회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 철학자….

신기술이 불러올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사람의 지혜가 필요하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직관으로 미래를 내다본다는 말이 아니다. 여러 지혜를 모아 더 나은 혜안을 도출할 수 있는 조직적인 활동 그 자체다. 현재 우리 사회를 특정한 미래로 밀고 가는 힘은 무엇인지, 어떤 특정한 이미지나 힘이 우리 사회를 미래로 끌어당기는지, 지혜를 모아 분석하는 것이 ‘미래를 예측한다’는 의미다.

로마클럽 보고서 30년 후

그렇다면 어떻게 예측하라는 말인가? 좋은 사례가 있다. 1972년 로마클럽의 미래 예측 보고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를 보자.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은 1968년 세계의 지도급 인사들이 이탈리아 로마에 모여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결성한 연구단체다. 클럽 결성 뒤 펴낸 첫 보고서가 ‘성장의 한계’였는데, 내용은 그야말로 ‘쇼킹’했다. 달나라를 넘어 원대한 우주로 나갈 것 같았던 인류가 조만간 성장의 한계를 맞이하고, 21세기에 붕괴한다니! 발간 직후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고, 30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수백만부가 팔려나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예측하는 데 이용한 컴퓨터가 더 관심을 끌었다. 당시 로마클럽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연구진에게 2100년의 미래 모습을 예측해줄 것을 의뢰했고, 연구진은 당시 최신 컴퓨터로 알려진 ‘월드3(World3)’를 가동했다. 이 거대한 컴퓨터는 마치 미래에서 온 것처럼 보였다.

DNA 지도 제작은 미래학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숱한 비난을 받았다. 어디든 우울한 이야기는 환영받지 못하는 법이다. 지구의 부존자원이 줄어들고, 심각한 오염으로 전 지구가 몸살을 앓게 되며, 식량자원이 줄어 결국 인류가 파국을 맞이한다고 주장했으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더욱이 로마클럽의 보고서가 나온 뒤 세계는 예측한 것과 달리 움직였다. 1970년대 잠깐 석유파동을 겪은 뒤 에너지 위기론은 자취를 감췄고, 식량위기는커녕 음식이 남아돌았다. 엉터리 예측이라는 평가가 맞는 듯했다.

보고서가 나온 뒤 30여 년 지났을 때 ‘성장의 한계’를 다시 평가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지난 30년의 데이터로 검증해보자는 시도였다. 이러한 움직임 중 2008년 그레이엄 터너(Graham Turner)가 펴낸 ‘성장의 한계, 30년 뒤 평가(A Comparison of the Limits to Growth with Thirty Years of Reality)’를 주목할 만하다. 로마클럽 보고서는 1900년부터 1970년까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1970년부터 2100년까지의 인구, 식량, 산업생산, 오염 그리고 재생할 수 없는 에너지의 추이를 예측한 것이다. 터너는 1970년부터 2000년까지의 데이터를 로마클럽의 예측 데이터와 비교했고, 30년 동안의 예측이 맞았는지 검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로마클럽의 예측은 맞았다.

‘성장의 한계’는 단순히 하나의 미래를 제시한 보고서가 아니다. 현상의 유지, 개선, 개혁이라는 세 가지 가정을 두고, 2100년까지 사회를 변화시킬 5가지 핵심 요소(위에서 언급한 인구 등의 요소)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미래를 예측했다. 첫 번째 시나리오를 보면 인류의 무자비한 소비는 자원고갈과 오염증가로 이어져 21세기의 세계는 과열되고 붕괴된다고 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생산물 중 75%를 재생하고, 오염의 25%를 줄이며, 농촌을 보호하고,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할 경우, 붕괴는 지연된다고 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인류의 소비 성향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정책을 개발하고 오염을 막는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할 경우, 붕괴 시기는 더욱 지연된다고 했다. 인류의 양심과 이성을 믿는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인 셈이다.

터너의 조사 결과, 첫 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과 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 사용량의 증가, 식량 부족, 에너지 고갈, 오염 증가 등에서 30년 동안 벌어진 현실은 첫번째 시나리오의 궤적을 따라갔다. 많은 사람이 지구의 환경을 복원하고, 소비를 줄이며, 식량자원을 소중하게 다룰 것으로 가정했던 두 번째, 세 번째 시나리오는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 결론에서 터너는 “소비를 즉각적으로 줄이고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로마클럽이 예측한 대로 21세기 중반 인류사회의 붕괴는 현실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티브(STEEP)를 불러와! ”

터너의 서늘한 경고는 잠시 잊고, 방법적인 측면에서 로마클럽의 보고서를 좀 더 살펴보자. 로마클럽 보고서는 미래를 예측하면서 논리의 일관성을 잃지 않았다. 예측의 가치는 유용하고 논리적인데 있지 정확한 데 있지 않다. 이 보고서는 시나리오별로 사회를 미래로 밀고 가는 여러 힘을 분석했고, 일관성 있는 논리를 바탕으로 복수(複數)의 미래를 예측했다. 미래학자들은 단일한 미래를 예상하지 않는다. 우리가 실제 경험하는 세상을 보자. 때로는 좋고, 때로는 나쁘며, 때로는 엉뚱하다. 우리가 예상하는 미래의 모습도 이럴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미래를 예측하려면 관점의 전환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대학의 미래를 예상하라는 과제가 있다고 하면, 학생은 배움의 미래를, 교수는 가르침의 미래를, 학교 행정가는 재정의 미래를 예상한다. 처지에 따라 예측의 출발선이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할 대학의 미래는 학생과 교수, 대학 행정가가 예상한 미래가 뒤섞인 그 무엇일 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안팎을 드나들며 너와 나의 관점을 바꿔보고, 강자와 약자의 시각을 교차시킬 때 더 좋은 시나리오가 나온다. 좀 더 정확한 예측에 이르는 것이다.

로마클럽은 사회를 변화시킬 다섯 가지 요소를 고려했다. 예측의 기본이다. 데이터 교수는 “스티브를 불러오라”고 말한다. 데이터 교수가 말한 스티브는 영어로 STEEP, S는 사회적(social) 요인, T는 기술적(technology) 요인, 두 개의 E는 경제적(economy) 요인과 환경적(environment) 요인, 그리고 P는 정치적(political) 요인이다. 여기에 추가한다면 미디어, 여성, 교육, 군대의 움직임이다. 미래의 트렌드를 분석할 때 이런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데, 데이터 교수에 따르면 이렇게 해도 종종 좋지 않은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다. 연구자의 질문이 좋지 않을 때다. 뉴욕의 말먹이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국제회의 참가자들이 이런 요소를 모두 고려했다고 해도 만약 이들이 말의 증가를 피할 수 없는 사실로 단정할 경우, 시나리오는 쓰레기가 된다. 누군가는 ‘만약 말이 사라진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져야 했다. 지금 우리 앞에서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어떤 경향(trend)이 어느 순간 멈출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가령 자동차 바퀴가 사라진다면, 영어 사용이 시들해진다면, 어린이들이 어른을 가르친다면, 결혼 상대자가 로봇이라면, 지구상에 백인이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진짜 어떻게 될까?

질문만 하고 적절한 예를 들지 않아 짜증이 날 법한 독자를 위해 여기 두 개의 작은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두 편의 스토리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겠다. 지난해 데이터 교수와 프로젝트를 할 당시 만들었던 것이다.

시나리오 1: 지구상의 마지막 백인, 세상 떠나다

‘코카시안’으로 분류되는 백인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21세기가 저물 때쯤, 백인이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인류의 역사로 볼 때, 세계의 표준이 되는 사람을 꼽으라면 중국에 사는 한 여성이다. 19세기까지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중국과 인도가 있는 동남 아시아인이었다. 그러나 18세기와 19세기, 유럽 백인의 인구가 15% 증가하는 기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유럽인이 미국과 오세아니아, 남아프리카로 대거 ‘새로운 세계’를 찾아 이동한 덕분이었다. 또한 이 시기는 서구가 산업기술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던 때다. 이를 계기로 세계는 농경사회에서 군산복합체 사회로 이행했다.

19세기 세계 인구가 10억명이었으나 현재 67억명을 헤아리고 있으며, 2050년엔 90억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선진국은 출산율 감소로 인구가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백인 인구 비중이 낮아지고 있는데, 1900년 백인과 유색인의 인구 비율은 50:50이었으나, 현재는 15:85, 21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 5:95로 급격히 떨어질 전망이다.

백인종의 감소는 지금까지 이들이 누렸던 문화, 경제력, 종교, 기술력 등이 점차 쇠퇴함을 의미한다. 백인종의 멸종을 극단적으로 예측하자면,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멸종의 위기에 있는 ‘고래와의 산책’이 인기상품으로 개발됐듯, 머지않은 미래엔 아프리카에서 ‘백인과의 산책’이 인기상품으로 팔릴 날도 올 수 있다. 미국에선 인구 감소 현상을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미국으로 몰려드는 이민자들 덕택이다. 그러나 이들이 대부분 유색인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백인의 감소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미래를 예측할 때, 추세를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추세가 백인들에겐 악몽일 수 있으나, 넓게 보면 서구 중심의 주류 문화가 사라지고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가치가 부각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과도한 소비를 부추기는 산업사회를 넘어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새로운 사회가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미래를 예측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과거의 짧은 경험만으로 예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구문화가 세계를 지배한 때는 인류 역사에서 지극히 짧은 기간이었다.

미래를 예측할 때는 여러 가지 근거가 있어야 한다. 위에 소개한 ‘백인 시나리오’는 2008년 8월 ‘사이언스’에 게재된 ‘인구 간극(The Population Gap)’ 보고서와 미국 워싱턴DC의 인구센터(the Population Reference Bureau)가 펴낸 보고서(Efforts to reduce birthrates have stalled in many of the world‘s poorest countries)를 기초로 했다. 참고로 인구센터는 미국 인구가 계속 증가해 2050년 4억39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시나리오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떤 추세의 지속과 중단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모든 현상에는 이해관계에 따라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게 마련이다. 새로 등장할 현상으로 누가 덕을 볼 것인지, 손해를 볼 것인지 예측하면서 기회와 위협의 요인을 적절하게 배치해야 한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를 보자.

시나리오 2: 우리 딸이 로봇과 결혼하는 날

로봇 공학과 인공지능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미 기계는 인간의 생존을 유지하는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인간이 결정했다면 재앙을 초래했을 법한 일까지 척척 해내고 있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인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과거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작업만 수행했던 기계가 지금은 인간의 정서와 감정을 다루는 일까지 맡고 있다. 심지어 예측이 필요한 일까지 기계가 담당한다. 현자(賢者)나 했을 법한 사회문제 진단과 해결방안 모색까지 기계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컴퓨터는 인간보다 논리적인 존재로 설계됐다. 인간처럼 감정이 없다 보니 뭐든지 명쾌하고 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최근 컴퓨터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인간의 감정에 적절히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화내고, 좌절하고, 울고, 안아주고, 격려하는 등의 감정은 인간만이 누렸던 독특한 능력이다. 물론 동물도 어느 정도 이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젠 컴퓨터마저 이 감정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적절한 때 적절한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 이 때문에 인간과 인공지능로봇의 관계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로봇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환자의 정서까지 고려하면서 간호하는 로봇은 이미 일부 병원에서 맹활약 중이다.

컴퓨터의 감정 표현 능력이나 인간과 대화하는 능력은 아직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놀라운 속도로 정교해지고 있다. 2008년 10월12일, 영국에서 열린 인공지능 대화능력 경진대회를 보자. 이 대회의 이름은 수학자 앨런 투어링(Alan Turing)의 이름을 따서 ‘ Turing Test’라고 지어졌다. 5분 동안 인간과 컴퓨터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대화하느냐에 따라 우승자가 결정된다.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대화를 들은 뒤, 인간과 컴퓨터의 대화인지, 인간과 인간의 대화인지를 판별한다. 만약 컴퓨터와 인간의 대화였는데도 인간과 인간의 대화로 간주될 경우, 참가자는 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 있는 로봇은 이제 외형까지 인간의 모습을 닮아간다. 차갑고 딱딱한 존재였던 로봇이 부드럽고 따뜻한 존재로 바뀌고 있다.

이런 추세로 내다보건대, 머지않아 인간과 로봇이 결혼할 수 있는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 논쟁에 종교가 끼어들 것이 틀림없다. 이와 관련해 스리랑카 미래학자인 서스탠샤 구나리테이크(Sustantha Goonalitake)는 무슬림과 기독교는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지만, 불교에선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를 허용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만이 영혼이 있다는 생각, 혹은 변하지 않는 ‘자아(自我)’가 있다는 생각은 사실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범한 과오의 원형을 찾아내는 작업이야말로 미래 예측의 기본이다.

인류 사회에 로봇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때 종교 간의 대립이 발생하고 불교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은 아주 흥미롭다. 사실 미래 예측은 즐거운 일이다. 나의 지적 한계를 넘어 마치 바다의 파도(변화)를 타듯 옮겨 다니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이 시나리오는 ‘사이언스 데일리(Science Daily)’의 2008년 10월8일자 기사(Machines Edge Closer To Imitating Human Communication)를 참조했다. 최신 과학 기사와 미래학자의 논문, 로봇을 두고 벌어졌던 역사적 사실 등이 버무려지니까 그럴듯한 한 편의 미래 시나리오가 나온다. 미래 시나리오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선 차후 자세히 소개할 것이다.

삼성 비자금 사건 해부

지난달에 미래학계 2세대 대표주자로 소하일 이나야툴라 박사를 소개한 바 있다. 지난해 그가 50세 생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와는 한국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데 선한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의 부인 이바나 밀로제빅(Ivana Milojevic) 박사도 유명한 미래학자다. 독특한 시각으로 페미니즘의 미래를 연구한다. 여기선 소하일의 미래 예측 방법론을 짤막하게 소개하겠다.

그의 예측 방법은 ‘예측 해부학’에 가깝다. 그가 고안한 방법론의 이름도 원인다중분석법(Causal Layered Analysis)이다. 한 현상의 다층적인 구조를 4가지 방법으로 해부하듯 분석한다. 훌륭한 미래학자의 특징 중 하나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방법론이 쉽다는 점이다. 물론 제대로 하자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겠지만,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어렵게 이야기하는 사람일수록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소하일의 방법론도 쉽다. 금방 따라 할 수 있다.

필자는 2007년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삼성 비자금 사건에 소하일의 방법론을 적용했다. 소하일의 방법론을 써볼 때 마침 이 사건이 벌어졌고, 나는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비자금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비자금의 미래’도 그려볼 요량으로 원인다중분석법을 적용했다. 다시 경제부 기자가 된 기분이었다.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의 대표작.

소하일은 4가지 단계로 현상을 해부한다. 첫째는 표피적인 분석으로 대중의 시각을 탐색하는 단계다. 어떤 현상을 다룬 신문기사를 보되 기사의 내용보다 제목을 주의 깊게 본다. 삼성 비자금 사건의 경우, 기사의 헤드라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떡값’ ‘비자금’ ‘로비자금’ 등이었다. 우리가 흔히 뇌물을 떡값이라고 하는데, 여기엔 ‘이 정도는 받아도 괜찮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뇌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보여준다.

둘째는 학계나 연구소, 혹은 신문의 논설위원들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다(간단하게는 신문 사설이나 기고문을 읽으면 된다).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지적인 시스템의 공통된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다. 삼성 비자금 문제가 터졌을 때 지식 시스템에서 발신한 내용은 주로 기업의 투명성 제고 주문이었다. 세계화 시대에 기업의 신뢰가 중요한 자산이기에 기업은 우선 투명한 재정, 공정한 운영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충고였다.

첫째 둘째가 다소 피상적인 분석 단계라면 셋째 넷째는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단계다. 앞서 두 가지의 분석이 피상적이라고는 하지만 비자금 문제의 단기적 처방을 내놓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나머지 두 단계는 장기적인 대안을 찾는 과정이다. 셋째 단계에선 언어학적, 문화구조적, 심리학적 자료를 찾아봐야 한다. 여기선 삼성만의 문제라기보다 한국 기업 전체의 문제라고 가정한다. 누가 기업을 운영해도 비자금을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를 찾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 그러니까 삼성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는 말자. 재수 없이 걸렸으니 잘못을 덮어주자는 주장을 이끌어내는 것도 아니다. 사실 셋째 분석을 제대로 하자면 언어학자, 심리학자, 문화학자가 만나 깊이 있는 토론을 해야 한다. 이 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는다.

마지막 단계의 분석은 한국 사회에 내재하는 집단 무의식의 원형을 찾는 것이다. 비자금 사건의 경우 한국 기업과 공무원, 정치인 혹은 시민단체가 비자금으로 유착된 과정이 반복되고, 이런 행태가 지속되도록 조장하는 무의식을 탐색해보는 시도다. 이런 무의식을 신화나 속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좋은 게 좋다’는 우리의 정서는 어떤가. 뇌물을 받는 사람으로선 ‘뇌물을 주는 당신이 좋다는데, 그렇다면 나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뇌물을 주는 사람의 처지에선 ‘돈 받는 당신이 좋아하니까 나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서로 애매한 태도로 도덕과 정의를 적당히 무시하는 것이다. 이 단계의 분석도 여러 사람이 모여 수다를 떨 듯 이야기한다면 더 적합한 속담이나 정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현상을 정교하게 해부할수록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DNA 구조를 밝혀내면 치명적인 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와 같다. 우리가 늘 범하는 실수의 원형을 찾아내면 그걸 고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더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예측의 궁극적 목적이다.

“자신에게 확신을 가져라”

지난해 겨울, 하와이 미래학연구실은 외부 손님들로 북적였다. 혁신적인 과학이론을 개발한 네 명의 학자가 데이터 교수를 만나 미래학과의 연계 가능성을 타진하고 돌아갔다. 이들이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데이터 교수는 나에게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줄 것을 부탁했다. 학과사무실에서 카메라를 빌린 나는 열심히 촬영했는데, 프레임이 좋지 않았다. 말하는 연사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야 했는데 카메라에 달린 전기선이 짧아 연사의 뒤통수를 찍기도 했고 참석자의 얼굴이 일부 잘리기도 했다. 이 장면을 미래학연구센터 홈페이지에 올리기로 했는데, 내가 찍은 것은 질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했다.

다행스럽게도 학자들과 함께 온 한 스태프가 더 좋은 각도에서 세미나 장면을 촬영했다. 게다가 화면 편집도 할 줄 아는 전문가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편집한 동영상을 복사해달라고 했고, 그도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이렇게라도 일을 처리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정을 들은 데이터 교수의 반응이 의외였다. “부족해도 네가 촬영한 것을 쓰는 게 어때?” 나는 별생각 없이 “더 좋은 게 있으니 그게 도착하면 쓰죠”라고 했다. 더 좋은 것을 쓰자는 나의 생각이 틀렸는가?

이 글 서두에 소개한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는 ‘미래를 읽는 기술’ 서문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게재했다. 그의 나이 44세 때 갓 돌이 지난 아들에게 쓴 글이라고 한다.

“아들아, 계획 자체에 확신을 갖기보다는 (부족해도) 자신에게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건 미래를 전망하고 그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너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라는 뜻이란다. 어떤 상황이든 철저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얘기도 되지. 너에겐 너만의 ‘작전실’이 있고, 그곳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할 거야. 어떤 상황이 와도 그 상황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