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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연구

1876년 최초의 전화통화

 

ㆍ벨 교수 전화기 이용 첫 ‘통신 혁명’

“왓슨, 이리로 오게. 자네를 만나고 싶네.”

1876년 3월10일, 전화기 발명가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송신 장치에 대고 소리쳤다. 근처 다른 방에 있던 그의 조수 토머스 왓슨의 기계에서 벨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보스턴 대학의 음성생리학 교수로 재직하며 전화기를 개발하던 벨이 자석식 전화기를 이용해 세계 최초의 전화 통화를 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일화는 이후 상당한 도전을 받았다. 벨은 실험이 성공하기 한달 전 쯤인 2월 중순에 ‘전기진동을 일으켜 목소리나 그 밖의 소리를 전신으로 전달하는 방법과 기구’에 대한 특허를 미국에서 신청해 3월 초에 최초로 특허권을 얻었다. 그런데 동시대 인물 중 전화기를 발명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엘리샤 그레이라는 발명가 역시 같은 특허를 냈지만 벨이 2시간 앞서 신청했다는 이유로 특허권을 얻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벨이 그레이가 낸 특허신청서의 내용을 미리 보고 핵심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그레이는 벨을 상대로 특허권 소송을 제기해 11년간 법정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필립 라이스 역시 간발의 차이로 특허권을 따내지 못한 또다른 불운한 발명가다. 벨이 서류를 접수한 지 몇 시간 후에야 소리를 전류로 바꾼 뒤 다시 소리로 바꾸는 기계장치에 대한 특허를 낸 탓에 인정받지 못했다.

오늘날 벨은 전화기에 대한 ‘최초 특허권자’의 지위만 역사에서 유지하고 있다. 미국 의회가 2002년 이탈리아 출신인 안토니오 무치가 벨의 전화발명을 무려 20여년 앞서 전기식 음성전달 장치를 발명했다고 공인했기 때문이다. 무치는 중병에 걸린 아내 에스테로와 대화하기 위해 전화기를 만들고 이에 대한 임시특허를 냈지만, 매년 10달러가 드는 특허 갱신료와 200달러의 특허권 취득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권리를 포기했다. 당시 전화기의 상업적 가능성을 꿰뚫어본 투자자도 없었기에 무치는 잊혀진 불운한 발명가가 되고 말았다.

현재의 유선전화기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많은 발명가들의 혁신이 있었다. 벨이 발명한 전화기는 송·수화기가 하나로 돼있어서 사용하기가 불편했으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탄소 송화기를 만들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전화망은 헝가리의 기술자인 티바다르 푸스카스가 1876년 전화 교환시스템을 발명하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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